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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백석(白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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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31일(화) 16:11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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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 (주)문경사랑 | | 영순면 이목리에 있는 백포(白浦)는 우리 문경의 끝이면서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마을이다. 마을 뒤의 달봉산은 운달산의 지맥이 우리 지역의 동북쪽을 한껏 달리다가 비로소 멈추어 호흡을 가다듬는다.
예천의 내성천과 우리 문경의 금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삼강(三江)이 마을을 휘돌아 더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은 우리 지역에서 생성된 활달한 산의 기운들과 생동하는 물의 기운들이 교차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의 풍광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
백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넓고 깊은 강을 따라 펼쳐진 은빛 모래밭이 연상된다. 오래 전, 강 건너에는 하풍나루라고 부르는 포구가 있었다. 소금배가 드나들기도 했는데 맞은편에는 화포(花浦), 꽃개라는 이름의 포구가 있었다. 꽃이 지천으로 피어 꽃개라고 불렀다는 포구는 가을이면 들꽃과 황금빛 들녘이 큰고개 입구까지 이어졌다.
백포의 하늘과 강물은 늘 백로와 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한 때는 강에 들어가면 다리에 고기들이 감겼어요.”
수년 전 반백이 넘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어느 주민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그런데 안동댐이 생기고 아래 쪽 낙동강에 여러 개의 보(堡)가 지어지면서 물고기 수가 급격히 줄었다고 한다. 수량이 적고 유속이 느려진 때문에 물고기들이 사는 환경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마을 앞을 가로막은 제방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은빛모래만 빼앗은 것이 아니다. 은빛모래였던 백사장은 야구장과 유원지 등으로 변해 옛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백포에는 여전히 옛 원형질의 중요한 유산이 남아 있다. 그것은 백석(白石)이다. 마을을 지나 강이 보이는 산자락에 닿으면, 강 너머에 조선시대 마지막 주막이라고 알려진 삼강주막과 마을과 연결되는 달봉교가 보인다. 그때 시선을 가까운 강으로 돌리면 백사장에 흰 몸을 드러내고 누워있는 괴석(怪石) 하나가 있음을 알게 된다.
백석(白石), 이 바위로 백포(白浦)라는 마을이름이 지어졌고 백석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 아래에 정자 하나를 얹어 백석정(白石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백석정은 마을과 주변의 풍경을 완성하는 정점(頂點)이 될 수 있다. 정자는 조선 초 이조정랑을 지낸 백석 강제에 의하여 지어졌다. 정면 3칸에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는 고아하면서 운치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정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유유(愉愉)하고 자적(自適)하였다. 그리고 정자를 사위인 구선윤에게 물려주었다. 백석정을 구씨정자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지역의 옛 유학자들은 이 백석과 정자를 소재로 시를 즐겨지었다. 옛 사람이 지은 백석정(白石亭)이라는 시(詩)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 백석은 천년토록 희고, 장강(長江)은 만고에도 길구나. ……”
사실, 정자에서는 백석이 보이지 않는다. 백석을 보려면, 정자에서 내려와 강 가까이에 있는 언덕으로 내려와야 한다. 백석은 강물이 많을 때에는 물에 잠겨 있으나, 평소에는 그냥 흰모래 위에 몸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문득, 궁금했다. 과연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저 백석이 수백 년 동안 이 마을과 정자의 이름이 되어온 그 원형질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웃 금포(金浦)마을의 유래가 되는 검은 바위(黔石)와 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백석정이라는 시처럼 앞으로도 천년토록 지금 모습 그대로 일지 궁금해졌다.
며칠간 비가 내렸다. 그 비에 백석이 강물에 잠겨 잠시나마 몸을 씼을 수 있기를 바래보았다. 그래서 창밖을 보며 한 차례 비가 더 내렸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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