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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빛이 제철

2021년 07월 20일(화) 16:13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주)문경사랑

 

아침이었다. 출근을 하려는데 못 보던 책이 눈에 띄었다. 안해가 어제 저녁에 주문했던 책이 왔다는 말이 떠올랐다. 문고판보다 조금 큰 크기의 산문집이었다. 책을 펼쳐보니 짧은 글들이 보였다.

그냥 돌아서 나오려는데 책표지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시인 박준, 그의 첫 산문집!”이라는 광고문구가 보였다. 책을 가방에 넣고 서둘러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에 책이 생각났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었다. 그리고 책 표지에 적힌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라는 글을 다시 보았다.

시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밥을 짓고 먹는 것에 비유하고 있었다. 밥은 생존 본능과 같은 절실한 대상인데, 밥 지어 먹는 일에 비유한 사랑이라니! 시인이 지어낸 사랑의 다른 표현에 잠시 말을 잃었다. 어쩌면, 시인에 미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성찰 때문이었으리라.

그제서야, 산문집을 넘겨보았다. 시인이 쓰는 산문은 긴 장시(長詩)에 가깝다. 그리고 시가 그렇듯 매 문장마다 방심(放心)하듯 쓰여진 글이 없었다.

시인의 시에 ‘낙서’라는 시가 있는데, 산문집에서는 그 시를 쓰게 된 과정을 한편의 여행기(旅行記)로 풀어내었다. ‘알맞은 시절’이라는 글이다.

봄날, 남해로 떠난 시인은 ‘봄도다리’나 ‘도미’ 같은 제철 음식을 맛보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아 여중학교 근처에 있는 분식집에 들르게 된다. 몸이 불편한 여자와 늙은 남자가 시인이 주문한 김치찌개를 내어놓았다. 음식에 서툰 늙은 남자가 내어놓은 찌개를 맛있게 먹는 시인의 모습에 부부는 안도한다. 그들의 눈빛을 본 시인은 학생들이 낙서한 식당 벽에 이렇게 적어놓고 떠난다.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

시인은 우리가 간혹 착각하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랑에 경고하고 있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내 팔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팔인 것이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나의 따스함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따스함인 것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상실의 시대’의 글 일부를 인용하면서, 시인은 동조하듯 이렇게 부연했다.

“상대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그 누군가’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 혹은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그 사랑이 과거 ‘그 누군가’가 받았던 것이라거나, 훗날 다른 ‘그 누군가’가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로 사랑을 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은 곧잘 상한다.”라고 말이다.

살펴보면, 저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서 절대 변하지 않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찾는 것은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그 누군가’의 손과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일 뿐이다. ‘그 누군가’가 지금은 우리인 것처럼, 나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끔씩, 정말 가끔씩 시인의 사랑 법을 배워야 한다. 상대방이 사랑에 허기질 기색이면 그이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어봐야 하고, 봄날이 아니어도 무더위에 지친 여름 저녁 시원한 수박화채를 함께 먹으며 안도하는 눈빛으로 여름 한 철도 사람의 눈빛이 제철임을 느껴봐야 한다.

그때에,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찾는 팔과 따스한 눈빛이 ‘그 누군가’가 아닌 ‘나’임을 확신할지 모른다.

참, 이 책의 제목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다. 정말,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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