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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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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09일(금) 16:53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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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 (주)문경사랑 | | 성경을 읽다 보면 몇 가지 의문 나는 부분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산상수훈(山上垂訓)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을 때면 늘 걸리곤 한다. 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째서 예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행복하다고 한 것일까. 마음이 가난하다는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생기는 의문이다. 차라리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했다면 그 뒤에 이어지는 말들을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최근 어느 책에서 이 구절을 중국어로 번역한 한자를 접하는 기회가 있었다.
“허심적인유복료(虛心的人有福了) 인위천국시타문적(人爲天國是他們的)”
즉, 우리말의 “가난”에 해당하는 말을 중국에서는 “허(虛)”로 번역한 것이다. 허심(虛心)은 마음을 비우거나 욕심이 없는 마음이라고 한다. 우리들이 어떤 대상이나 일에 유난히 집착하거나 필요 이상의 욕심을 가질 때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마음을 비우거나 욕심의 본질이 되는 마음, 허심(虛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주간문경 칼럼에 글을 오랫동안 써왔다. 그런데 매번 쓸 때마다 문장이 길어지고 글의 양도 많아진다. 신문사에서 내게 할당된 지면은 A4 용지 한 장 반 정도 이내인데, 이를 훨씬 넘는 양이 나온다. 그때는 단어와 문장을 줄이거나 지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불필요한 표현, 어색한 문장, 적절하지 못한 비유 등이 삭제되곤 한다. 지워지거나 줄여지는 문장과 단어를 가만히 보면 그 글을 썼을 때의 마음이 엿보인다. 그것은 잘난 체하면서 남에게 보여주려는 마음, 글을 폼나 보이도록 쓰려는 욕심이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런 글을 쓸 때는 글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마음이 거북하고 불편하다. 그에 비해 글이 쉽게 쓰여질 때가 있다. 그때는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다. 글 외에 다른 욕심들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잘난 체하는 마음과 멋있게 보여야지 하는 욕심에서 쓰여진 글들은 공감도 떨어지고 무미하고 건조하다. 그 글들에 ‘나’라는 아상(我想), 즉 잘난 체하는 생각과 마음들이 본질을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허심(虛心)은 바로 저 잘난 체하는 나, 아상(我想)을 비우는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금강경에 아상(我想)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아상은 금강경 32분(三十二分)까지 전체를 이끄는 주재어(主材語)이다. 부처는 제자 수보리에게 ‘아상이 있으면 보살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더하여, 아상을 비롯한 일체의 상을 멀리하면 평화롭고 행복한 마음을 얻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상이 적을수록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했다. 이제 알겠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허심(虛心), 즉 나라는 생각으로 남과 분별하여 잘난 체하고 싶어 하는 아상(我想)이 없는 사람, 내가 비워진 자리에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마음들로 채워진 사람, 그래서 행복하고 하늘 나라가 그의 것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진리는 하나라고 했다. 행복에 대한 성경과 금강경의 가르침이 이렇듯 서로 다르지 않음은 참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원고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 ‘가난한 마음“으로 글을 써야겠다. 행복과 하늘 나라가 나의 것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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