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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범오곡(草凡五谷)

2021년 05월 18일(화) 16:43 [주간문경]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주)문경사랑

 

나는 1936년 7월 28일에 문경시 점촌동 흥득리 깃골에서 태어났다. 먼 옛날 이 깃골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동리 우물을 팠는데, 땅 속 수맥(水脈)이 있는 곳에서 큰 거북이를 발견하여 옆을 흐르는 영강(穎江)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 마을의 이름을 귀곡(龜谷, 거북이 고을)이라 하였는데,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귀곡이 깃골로 바뀌어졌던 것이다. 나는 이 곳에서 18세이던 1954년 봄까지 살다가 안동(安東)으로 유학을 떠났고 부모님은 1965년까지 사시다 서울로 완전 이주하셨다. 태어나 자라고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졸업하기까지 18년간 산 귀곡, 곧 깃골은 나의 생애에서 잊을 수 없는 정든 고향으로 가슴 깊이 각인되어 있다. 핸드폰 속에 동요 ‘고향의 봄’을 넣어두고 가끔 듣기도 하고 시간이 나면 이 곳 고향을 찾아 ‘옛 생각’의 가요를 부르며 향수에 젖기도 한다. 첫 번째 인연의 제1곡인 ‘귀곡’의 내력이다.

2002년 66세로 교수 정년을 하고 한국자치발전연구원의 고문․원장 등의 직함으로 정규 출근하기 시작한 곳이 경기도 고양시(高陽市) 일산동구(一山東區) 백석동(白石洞)이었다. 서울에서 3호선 지하철로 가면 대곡역(大谷驛) 다음이 백석역이다. 백석역부터는 일산 도심을 통과하지만 대곡역은 지상이 있는 역으로 건물은 역사 밖에 없는 허허벌판이다. 1시간 여 지하철을 타고 와서 거의 잠이 든 상태라 지나치지 않으려고 대곡역이라는 방송이 나오면 정신을 차리고 내릴 준비를 한다. 머리 속에 인상 깊게 새겨진 직장과 연결된 지하철 역사의 고장으로서 두 번 째의 오곡 중 하나가 되었다.

약 30년간 살던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驛三洞)의 단독주택을 처분하고 새 빌라로 이사한 곳이 강남구 도곡동(道谷洞)이었고, 때는 2014년 10월이었다. 나이가 들어 부부가 살아가기에는 독립주택이 너무 힘이 든다는 것을 깨닫고 단행한 조치였다. 매봉산(梅峰山) 아래 매봉역 가까이 있는 월드 메르디앙 빌라는 도곡 1동의 조용한 거주지이다. 뒤로는 매봉산이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양재천(良才川)이 흐르고 있으며, 지하철 3호선이 통과하고 있어 환경도 비교적 쾌적하고 생활여건도 양호한 편이다. 약간 시골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이름이지만 나의 거주지로서 오곡의 하나로 편입됨에 매우 만족감을 느낀다.

1992년 미국에서 귀국하여 서울대학교 교수로 취임하면서 같은 전문분야의 기관과 인사 및 학자를 많이 사귀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원(金源, 1936~ )교수였다. 학회나 세미나 등의 학술활동, 국가나 공공기관의 자문 및 위원회 활동, 골프나 해외여행 등에 함께 참여하는 기회가 대단히 많아서 어느 누구보다도 친숙한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깊은 우정을 가지고 30여년간의 교류를 맺어오다가 교수정년과 함께 안동으로 완전 낙향하면서 다소 소원해졌다. 안동 내앞(川前)에 있는 그의 생가 마을이 운곡(雲谷)인데 그는 이 마을 이름을 그의 아호(雅號)로 썼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의 아호 운곡이 나의 5곡의 하나로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존경하는 역대 인물 가운데 한 분이 이이(李珥, 1536~1584) 선생이시다. 강릉(江陵)에서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자이자 고위 관료를 지내고 경기도 파주(坡州)에 안장되었다. 해동공자(海東孔子)의 칭호를 받고 문묘(文廟)에 배향되셨다. 그가 자라난 고향이 밤골, 즉 율곡(栗谷)이어서, 이를 바로 그의 아호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율곡이 오곡의 하나가 됨으로써 초범오곡의 가치와 비중을 더욱 높이게 되었다. 참으로 고맙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오곡 중 셋은 출생지와 취업지 및 거주지인 귀곡․대곡․도곡이고, 둘은 인물인 친우 운곡과 존사(尊師) 율곡이다.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초범오곡이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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