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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와 세종대왕

2021년 03월 19일(금) 17:43 [주간문경]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주)문경사랑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다. “조선왕조(朝鮮王朝)는 하도 불행한 일과 좋지 못한 문제들이 많아서 이 한반도에 태어나서는 안될 왕조이지만 세종대왕(世宗大王)이라는 한 사람의 걸출한 군주를 갖고 있음으로써 모든 잘못이 용서될 수 있다.”

조선왕조는 최영(崔瑩)․정몽주(鄭夢周) 같은 충신을 다 죽이고 1392년에 고려(高麗)를 멸망시킨 다음 새 왕조를 건국하였으며, 그 태조는 이성계(李成桂)였다. 그리고 519년이 지난 제27대 순종(純宗)때 일본제국에 합병됨으로써 망국의 운명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건국 초부터 부자간의 갈등이 심했고 왕자의 난이 일어났으며, 숙질간의 왕위쟁탈로 수많은 충신이 처형되었다. 연산(燕山)∙광해(光海) 두 임금이 폐위되고 왕세자가 뒤주에서 죽는가 하면 왕비가 폐위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반상(班常)이 엄격하고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심하여 민란이 자주 일어났고, 정조(正祖) 이후에는 권문척신(權門戚臣)에 의한 세도정치로 국가기강이 문란해졌으며, 사화(士禍)의 발생과 당파(黨派)의 창궐로 수많은 선비가 희생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밖으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대침략전쟁이 일어나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으며, 드디어 구한말(舊韓末)에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파란만장한 조선왕조의 초기인 제4대 왕으로 취임한 분이 세종대왕이셨다. 조선 건국 5년 뒤인 1397년에 탄생하여 22세이던 1419년에 왕위에 오르시고 재위 32년만인 1450년에 붕어하시니 향년 54세였다.

태조 이성계의 손자이자 태종 이방원(李芳遠)의 셋째 아들이다. 휘(諱), 즉 이름은 도(祹)이고 자는 원정(元正)이며, 대군명(大君名)은 충녕(忠寧)이고, 일호(鎰號)는 장헌(莊憲)이었다. 왕위를 양보해준 두 분 형을 극진히 모시었고, 특히 전국 팔도의 풍류아가 된 맏형 양녕대군(讓寧大君)과는 돈독한 형제애로 교류했다고 한다.

왕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는 청송 심씨(靑松 沈氏)로서 8남 2녀의 자녀를 두었고, 매우 현명하여 대왕을 매우 슬기롭게 보필하였으며, 여주군(驪州郡) 능서면(陵西面)의 영능(英陵)에 대왕과 함께 안장되어 있다.

재위 32년 동안에 이루어진 치적은 국내외에 걸쳐 국방․외교, 정치․행정, 경제․사회, 문화․교육, 과학․기술, 천문․기상, 국악․역사 등 모든 영역에서 크게 빛났던 것이다.

이들 여러 가지의 혁혁한 치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한글’이란 우리 문자의 창제와 보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를 세운지 불과 27년 밖에 되지 않은 불완전한 상태였기에 대왕의 이와 같은 국내외의 치적은 향후 전개될 500년 통치의 기초를 굳건히 하는데 절대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특히 ‘한글’은 조선왕조 5백년간만 유효했던 것이 아니라 한민족이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나 유익하고 편의롭게 사용될 국가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 백성의 말씀이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조선 민족의 언어에 맞는 문자의 필요성을 절감한 대왕은 정인지(鄭麟趾)․성삼문(成三問)․신숙주(申叔舟) 등의 집현전(集賢殿)학자들과 같이 우리 글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자음(子音) 14자, 모음(母音) 10자로 된 표음문자(表音文字)인 우리 글, 곧 훈민정음(訓民正音)이 1441년에 완성되었으나 국내외의 반대에 부딪치어 정식 반포를 하지 못하였다. 국내에서는 집현전 부제학인 최만리(崔萬理) 등의 강력한 반대운동이 격심했고 밖으로는 당시 명(明)나라 황제인 영종(英宗)과 그 관료들의 반대가 심했던 것이다.

왕비인 소헌왕후가 명나라 황후에게 보낸 호소문에서 조선왕은 자기 백성에게 쉬운 글을 만들어주기 위해 자기 눈을 멀게 하면서까지 연구했으니 윤허해 달라는 간청을 드렸다. 이 슬픈 이야기를 들은 명의 황제는 “만 백성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기 눈을 멀게 만든 어진 임금의 뜻을 받아드리노라” 하였다.

그리하여 1446년 10월 9일 훈민정음이 공포되었고, 1927년 주시경(周時經)에 의해 ‘한글’이란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1997년에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조선왕조는 다른 왕조로 대체되어도 좋지만 세종대왕만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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