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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어, 올해도

2019년 12월 31일(화) 16:19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주)문경사랑

 

“난 오늘 업무서류 맞춰 봐야 해요. 늦을 거예요.”

카톡에 안해가 보낸 문자가 떴다. 오래전부터 안해는 늦고 있다. 답글이 손보다 먼저 머리 속을 달리고 있었다. 서툴게 손가락들이 휴대폰의 작은 글자판을 눌렀다.

그렇지만 답글은 화면 위로 올라가지를 못했다. 지금 여과 없이 뱉어내는 감정의 찌꺼기들로서는 이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또 속상하다.

안해는 정말 바쁘다. 언젠가부터 열시 전에 들어온 적이 없다. 어느 날은 아침에 눈을 떠고서야 안해가 자정이 넘어 들어온 것을 알게 되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다보면, 사실 저녁에는 시간을 낼 여유가 없다. 집에 오면 온전히 휴식을 위해서 시간을 보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약속과 하고 싶은 일들은 대부분 휴일로 미루게 된다. 그런데, 안해는 휴일도 바쁘다. 그래서 예전에는 함께 했었던 일들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럴 때면 낭패감이 든다.

최근의 안해의 늦은 귀가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40대와 50대 초반만 해도 시간은 나의 편이었다. 일 때문에 또는 사람들과의 약속 때문에도 늦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늦은 귀가에도 안해는 나를 맞아주었다. 물론, 불만이 있었겠지만 안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지금의 나처럼 요란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착각이었다.

“당신은 늦게 들어오고 아버님 혼자 수발들고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오랫동안 병중에 있었던 아버지 때문에, 안해는 퇴근 후에도 시아버지를 시중하는 며느리의 역할을 해야 했었다. 안해는 그 자리에 있기 위해 그냥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때는 몰랐었다. 착각이었다. 안해가 나의 늦은 귀가에도 그냥 맞아주었다고만 생각했던 것은 혼자의 생각이었다. 안해는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 주어진 일들을 말없이 감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부부의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사람들의 처한 위치가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든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이 그렇다. 안해가 늦게 들어오면서, 나는 온전히 노모(老母)를 봉양하는 시간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 안해가 했던 역할의 일부분을 내가 맡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줘요. 앞으로 지금보다 낫겠지.”

그래, 마냥 내 편이라고 믿었던 나의 시간들이 지나갔듯이, 지금의 고단한 저 안해의 시간들로 곧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안해의 말처럼 시간이 지나가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얼마 전 아들이 공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안해보다 바쁘지 않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하는 것은 아직 이른 듯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열심히 일한 뒤의 휴식이 즐겁듯이, 여유 있는 삶도 고단한 노동이 있어야 가능한 것일 터이다.

이제 곧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새해를 준비하는 이라면 이때가 가장 바쁠 것이다. 아마 오늘도 안해와 아들은 분명 늦을 것이다. 그리고 노모에게 저녁을 챙겨주고 혼자 남은 나는 방에서 그들을 기다릴 것이다. 늦은 밤, 새들이 집을 찾아오듯 그들도 ‘창(窓)이 있는 덕승재(德勝齋)’로 들어올 것이다. 그들에게 새해가 가기 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수고했어, 올해도.”

※ 주간문경 애독자분들에게 인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올해에도.”

010 952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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