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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조와 로마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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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1일(금) 15:29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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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 (주)문경사랑 | | 우리나라와 이탈리아는 공간상 아시아와 유럽이라는 전혀 다른 대륙에 속해 있고, 지리적으로 약 9,000km, 22,500리나 떨어져 있어 8시간의 시차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같은 시대에 오래도록 존재하였던 두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신라왕국(新羅王國)과 로마제국(Roman Empire)이었다.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건국하여 935년까지 56대왕에 의해 992년간 존속하였고, 로마는 기원전 27년에 제국이 된 이래 1453년까지 152대 황제에 의해 1,480년간 존립하였다. 그동안에 신라는 676년에 삼국을 통일하였으나 로마는 395년에 두 나라로 분열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먼저 건국 당시를 비교해 보기로 하자. 삼한(三韓)을 거쳐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朴赫居世)가 경주(慶州)에 신라왕국을 건국할 때, 로마는 아직 제국을 건국하기 직전이었으며, 중국은 전한(前漢)의 10대왕 선제(宣帝)때였다.
로마제국은 기원전 27년에 옥타비아누스(Octavianus)황제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이 해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 재임중이었다. 로마는 그 이전인 기원전 753년에 전설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고, 기원전 600년이 역사상 건국의 해가 되었고, 기원전 510년부터 공화정(共和政)이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174년경에는 도로포장이 일반화되었다.
그리하여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라는 격언이 생겨났던 것이다. 로마제국이 건국되고 422년이 흐른 395년에 69대 황제인 데오도시우스대제(Theodosius 大帝)에 의해 두 나라로 분열되는 운명을 마지했다.
호노리우스(Honorius)는 로마를 수도로 한 서로마제국을 세웠고, 아르카디우스(Arcadius)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현재의 터키 이스탄불(Istanbul))을 수도로 한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Byzantine)제국을 수립하였다.
신라는 17대 내물왕(奈勿王)때이고 중국은 동진(東晋)의 9대 효무제(孝武帝)때이다. 이로부터 81년이 지난 476년에 서로마제국은 13대왕 로물루스(Romulus)를 끝으로 멸망하였으니 신라 20대 자비왕(慈悲王) 때이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프랑크왕국(Frank 王國)이 계승하고 그 다음에는 신성(神聖)로마제국(The Holy Roman Empire)이 들어섰던 것이다.
신라는 건국한지 733년이 지난 676년 30대 문무왕(文武王)때 백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으니, 동로마제국 헤라클레이오스(Herakleios) 왕조의 5대황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4세 때였다.
이로부터 259년이 흐른 935년에 신라는 56대 경순왕(敬順王)을 끝으로 멸망하고 말았으며, 그 뒤는 고려(高麗)가 이어갔다. 신라 멸망시의 동로마제국은 마케도니아(Macedonia)왕조의 로마누스(Romanus) 2세 때였고 프랑크 왕국은 작센(Sachsen) 왕조의 하인리히(Heinrich) 1세 때였다.
드디어 동로마제국도 1,058년만인 1453년에 83대 콘스탄티누스 1세를 마지막 황제로 하여 멸망하고 말았으며 오스만 투르크(Osman Turks)가 그 뒤를 이었다. 이 때가 조선조 6대 단종(端宗)때이고, 신성로마제국은 함스부르크(Hamsburg)왕조의 프리드리히(Friedrich) 3세때였으며, 중국은 명(明)나라 7대 경제(景帝)때였다.
로마는 기원전 9세기경에 라틴(Latin)문자를 쓰기 시작하다가 175년에 로마제국의 공용어로 확정했으며, 신라는 기원전 2세기경에 전래된 한자와 함께 7세기말경에 만들어진 이두문자(吏讀文字)를 사용하였다.
신앙에 있어서는 로마제국의 발렌티니아누스(Valentinianus) 2세 때인 392년에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승인하였고 신라왕국은 528년 법흥왕(法興王)때 불교를 국교로 공인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로마는 초기에 공화정과 원로원제도를 실시했고 법률을 극히 중시했으며, 로마군단의 조직을 강화했었다. 신라는 초기에 육촌장(六村長)에 의한 화백제도(和白制度)를 실시하였고 충효(忠孝)를 중시했으며 화랑도(花郞道)를 중히 여겼다.
두 나라가 멸망한 뒤 신라의 영향력은 한반도에 국한되었지만 로마는 유럽 전체로 확산돼었고 후에는 미대륙과 전 세계로 파급되었다. 그 때 그 시절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은 경주와 로마에 그대로 많이 남아 있다.
‘경주돌이면 모두 옥돌이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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