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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휜의 일장춘몽

2019년 06월 11일(화) 17:42 [주간문경]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주)문경사랑

 

한자의 ‘甄’은 견이라 읽고, 또는 진이라고도 읽는다. 그래서 후백제(後百濟)를 세운 견훤(甄萱)을 진훤이라고도 부르지만 여기서는 우리의 귀에 익은대로 견훤이라 부르기로 한다.

현재의 문경시 가은읍(加恩邑) 아차동에서 태어났는데, 당시에는 가은현(加恩縣)이 관산현(冠山縣,문경의 옛이름) 및 호계현(虎溪縣)과 함께 통일신라 이후의 구주제(九州制)에 의한 상주(尙州)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역사책에는 상주 사람이라고 되어 있지만, 현재의 입장에서는 문경 사람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는 아자개(阿慈介)의 네 아들 중 하나였는데, 그의 출생에는 한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아차동 마을의 한 처녀가 임신을 했는데, 그 남자는 뒷산 금하굴(金蝦窟)에 살던 대구충인(大蚯蟲引)이라는 큰 지렁이가 준수한 청년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태어난 견훤은 어릴 때부터 비범하여 용마(龍馬)를 얻어 타고 다니던 말발굽 흔적이 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그의 원래 성은 이씨(李氏)였는데, 후일 견(진)씨로 바꾸어 상주견씨, 또는 황간(黃磵)견씨의 시조가 되었다. 신라의 군인이 되어 서남해 지방의 방위에 공을 세워 비장(裨將)이 되었다.

51대 진성여왕(眞聖女王) 무렵 국력이 쇠약하고,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서 양길(梁吉)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 도적이 횡행하였다.

견훤은 892년에 5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무진주(武珍州), 현재의 광주(光州)를 점령하여 독자적인 기반을 닦았다. 신라 효공왕(孝恭王) 4년인 900년에 완산주(完山州), 즉 현재의 전주(全州)에 입성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니, 바로 후백제가 그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양길의 부하였던 궁예(弓裔)가 송도(松都), 현재의 개성(開城)에서 후고구려(後高句麗)를 세움으로써 드디어 후삼국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후 후고구려는 철원(鐵原)으로 천도하여 마진(摩震)과 태봉(泰封)등으로 국호를 바꾸다가 918년에는 왕건(王建)이 궁예를 축출하고 왕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고려(高麗)라 명명했으며, 그 다음 해에 다시 송악(松嶽), 즉 개성으로 천도하였다.

견휜은 군사력을 키워 신라의 대야성(大耶城), 금성(錦城), 조물성(曹物城) 등을 침략하고, 고려 군대와도 여러 곳에서 싸웠다. 927년에는 경주를 침입하여 신라의 경애왕(景哀王)을 자살케 하고 경순왕(敬順王)을 새 왕으로 세우기도 하였다.

고려와의 전투에서 자주 패하고 많은 영토를 잃었으며 민심도 고려로 기울어지던 무렵에 왕위를 넷째 아들인 금강(金剛)에게 전하려 하였다. 이에 장자인 신검(神劍)이 935년에 부하 능환(能奐)과 공모하여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가두고 동생 금강을 살해한 뒤 자기가 왕위를 차지했다.

견훤은 3개월 뒤 절에서 탈출하여 나주(羅州)로 도망을 가서 고려에 투항하였다. 같은 해 말에 신라는 고려에 항복하여 멸망하였다. 견훤은 936년 6월에 왕건을 졸라 자기가 앞장을 서서 후백제를 공격하였으며, 9월의 일리천(一利川)전투에서 신검의 군대를 대파하고 그를 사로잡으니, 후백제는 2대 37년간으로 멸망하였다.

문경 출신으로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삼국통일의 꿈을 이루려던 견훤은 실력과 덕망을 갖춘 왕건이란 대적을 만났고, 또한 자식의 반란으로 권좌에서 밀려남으로써 충남 논산의 황산(黃山)에 있는 한 불사(佛舍)에서 일장춘몽의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던 것이다.

일찍이 고구려도 대막리지(大莫離支)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 ?~666)의 아들들인 남생(男生)·남건(男建)·남산(男産)의 권력 다툼으로 나라를 망하게 한 전사(前史)가 있었으니, 모두 비슷한 역사의 교훈이라 할 수 있다.

가정과 기업과 국가 모두 발전과 번영을 오래도록 지속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후손을 잘 두어야 함이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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