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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85):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36): ‘윌리엄 시볼드의 개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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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31일(금) 17:34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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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성주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 (주)문경사랑 | | 시볼드(Sebald)가 미 국무부에 이런 편지를 보낼 때(1949년 말) 미국과 미 국무부 내에는 두 개의 큰 흐름이 있었다.
패전국 일본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해 ‘일본을 철저하게 뜯어 고치자’는 중국파와 ‘일본을 그렇게 바보로 만들어 버리면 빨갱이들만 이롭게 된다’는 일본파의 대립이 그것이다.
초기에는 중국파가 득세해 일본을 철저하게 무력화하고 중국을 중시하는 전략을 구상했으나, 시간의 신(神)은 일본의 손을 들어준다.
소련이 원자탄을 보유한데(1949.8) 이어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고(1949.10) 이어 한국에서 전쟁(1950.6.25)이 발발하고 냉전이 본격화됨에 따라 미국은 일본을 끌어들여 대 소련 봉쇄에 함께 나서도록 만들었다.
전범국으로 처벌이 아니라 일본의 지위를 동맹국으로 격상시켰다. 일본 내 좌익세력과 노동조합의 활력을 억제하고 수출 등에서 일본 기업에 대한 우대정책을 폈는가 하면 전범국 일본으로부터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고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이를 따르도록 압력을 가하고 끝내는 사실상의 군대인 자위대를 창설하도록 했다.
미일안보동맹에 따라 일본이 국방비 부담 없이 경제 발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시볼드의 친 일본적인 행동은 당장 효과를 나타낸다. 한 달 뒤인 1949년 12월 29일에 나온 제 6차 초안에 일본의 영토 조항은 이렇게 수정돼서 나온다.
“일본 영토는 주요 4섬인 혼슈,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 및 인접하는 모든 작은 섬이다. 작은 섬은 내해(內海, 세토 나이카이)의 섬, 쓰시마, 다케시마(Liancourt Rocks), .......”
(The territory of Japan shall comprise the four principal Japanese islands of Honshu, Kyushu, Shikoku and Hokkaido and all adjacent minor islands, including the islands of the Inland sea(Seto Naikai), Tsushima, Takeshima(Liancourt Rocks), ......)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처럼 독도가 한국 영토에서 떨어져 나가 일본 품으로 넘어 가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정부수립 1년 반,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반년 전의 일이다.
미국이 이렇게 독도를 일본 영토로 규정하자, 평화조약 작성에 참가한 다른 연합국들이 반발한다. 특히 영국,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등 영 연방 국가들은 미국의 이런 편향적인 일처리에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자 미국은 제 7차 초안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영토 조항을 아예 빼버리는 제스추어를 취한다.
그리고 8차 초안에서는 영토 조항을 간략히 취급하되 구체적인 섬들의 이름을 다루지 않았다.
그러자 호주가 미국 정부에 질문서를 보낸다. “미국은 독도를 어느 나라의 영토로 보는가?”
미국은 호주에 보내는 답변서에서, 일본에 속하는 섬들에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독도를 포함시킴으로써, 일본 영토로 해석했다. 이러자 뉴질랜드와 영국은 미국의 입장에 ‘동의한다’는 문서를 보내지 않았다.
이렇게 돼 미국은 9차 초안에서도 구체적인 섬 이름을 다루지 않았다. 골치 아프니까 편법을 쓴 것이다.
그러자 동맹국 영국이 나섰다.
“애초에 연합국들이 합의한 원칙대로 하자”면서 영국은 1951년 3월, 자신이 작성한 독자적인 초안을 제시했다. 영국의 초안은 독도와 오키 섬 사이에 선을 그어, 독도를 한국 영토에 부속시켰다.
이 때 영국은 “장차 한-일 간의 영토 분쟁을 막기 위해서 독도를 한국에 부속시킨다”고 말했다. 4월 7일, 영국은 지도가 첨부된 이 초안(영국 측으로서는 이것이 최종안이다)을 미국 측에 보내고, 일본은 이에 놀라, 미국에 더욱 매달린다.
이때도 시볼드가 일본을 위해 총대를 맨다. (시볼드는 일본의 요청을 받고, 일본 요시다(吉田茂) 총리가 도쿄 시볼드의 사무실에서 덜레스 미국특사를 면담할 수 있게 한다. 이 자리에는 이구치 외무차관과 니시무라 조약국장이 합석한다)
이 면담에서 일본은 영국 측 초안에 대해 극력 반대한다. 이제 미국의 결정만 남았다. 미국은 영연방을 설득하고 또 일부 의견은 무시하면서 합동 초안을 만든다. 이게 1951년 6월14일이다.
“제 2조, (a)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Article 2 (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ands of Quelpart, Port Hamilton and Dagelet.)
이 문안은 그 뒤에 그대로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영토 조항의 문안이 됐다.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되는 섬 이름에서결국 독도가 빠진 것이다. 미국의 이런 친일적인 일처리가 오늘날 한-일간 영토분쟁의 씨앗이 된 것이다.
1951년 9월 8일 조인되고 1952년 4월 28일부터 발효된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의 영토 조항에서 독도가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처럼 이름이 명기돼,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점이 확정됐으면, 한일 간에 지금과 같은 영유권 다툼은 없었을 것이다.
앞에 인용한 강준식씨는 지금이라도 독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미국으로 하여금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평화롭게 해결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이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체결 당시의 실수 혹은 일본의 로비나 속임수를 인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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