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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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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29일(금) 15:56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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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 (주)문경사랑 | | “이것만은 양보를 못합니다.”
스님이 금방 부처님께 공양올린 화전(花煎)을 신도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때 어느 신도 한 분이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 남겨진 화전 하나를 더 덜어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웃었다.
스님은 화전 두 개를 접시에 예쁘게 담아 우리에게도 나눠 주었다. 사실, 걸어 들어오면서 절 뒷산에 핀 진달래를 보았다. 언제부터 진달래가 그곳에 있었는지 모른다. 청초한 듯 연붉은 그 진달래꽃이 자리를 옮겨 찹쌀로 빚은 떡 위에 앉아 있었다.
가지런하면서 단정한 모습에 망설이다가 화전 하나를 입에 물었다. 아니, 봄을 한입에 담았다. 쫀득한 단맛이 입 가득 고였다. 하지만 진달래꽃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화전은 이름과 눈맛으로만 만족해야 할 듯했다.
화전(花煎)은 진달래꽃이 필 때 그 꽃을 부치거나 떡에 넣거나 하는 떡의 일종이다. 이는 봄을 맞이하는 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화전’과 ‘놀이’가 합쳐질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된다. 보통 음력 3월 중순경에 교외나 야산 등지에서 행해졌다고 한다.
잠시 우리 지역의 화전놀이를 들여다보자. 언젠가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에서 조사한 ‘반속과 민속이 함께 가는 현리마을’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에 ‘현리사람들의 세시풍속과 여성들의 생활’이라는 소제목에 ‘화전놀이’가 소개되어 있다. 1950년대 후반 무렵 화전놀이 행사에 참가했던 마을여성의 인터뷰를 조사자가 정리한 글이었다. 일종의 회고 형식이다.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큰 산비탈에는 참꽃이 제법 탐스럽게 피었어요.”
산꼭대기의 서낭당이 화전장이었는데 서낭당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람결에 “깽자 깽자”하는 농악소리가 오락가락했다고 하였다.
“서낭당에 다 올라서니 지게 진 타성(他姓)들이 바쁘게 내려오는데, 아무래도 술이 모자랄 것 같아서 미리 져다 놓으려는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놀이의 기본은 술이다. 젊은이들과 아이들은 ‘씨름’을 하고, 여성들은 ‘윷놀이’와 ‘꽃지짐 먹기’, ‘꽃술을 따서 벌이는 싸움’ 그리고 ‘화전가 가창’ 등을 하였는데, 이때 분위기를 돋우는 것이 술이다. 그래서 인천채씨 외의 다른 성씨(他姓) 사람들이 바삐 술을 지어다 나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화전날에는 무서운 시댁 어른들도 며느리들이 노는 것을 허락했어요.”
놀이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풍물을 앞세워 천방모퉁이의 먼 길을 돌아서 내려오고, 미련이 남은 사람들은 강당에서 모여 남은 음식으로 밤을 새웠다고 한다. 그러나, 즐거움 뒤에는 항상 낭패가 따르는 법. 당시 새댁이었던 화자(話者)는 이렇게 한탄하고 있다.
“술단지를 진 타성(他姓)들의 걸음걸이가 위태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려오는 길에 술단지들이 죄다 깨져버렸어. 물론 우리집 술단지도.... 그토록 술단지 때문에 노심초사했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었지.”
그러나, 화전놀이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를 맺었다.
“누구를 탓하랴. 놀이판의 신명이 술맛을 당겼고, 오늘만큼은 신명이 죄가 되지 않는 것을....”
화전놀이는 이처럼 마을 사람 전체가 참석하는 화합의 놀이였다. 그래서 화전미를 공동으로 거두어 마을 주민 모두 즐겁게 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이렇듯 옛 사람들의 화전놀이를 떠올리고 있는데, 스님이 화전 하나를 더 얹어주면서 묻고 있었다.
“더 드릴까요?”
“양보까지는 아니지만,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화전 하나를 더 먹었다. 아니, 봄이 입으로 들어왔다.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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