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문희경서
|
|
2019년 02월 19일(화) 16:32 [주간문경] 
|
|
|

| 
|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 (주)문경사랑 | | 그는 강 같은 사람이다. 아니 바다인지 모른다. 고향이 산양면 금동이라고 했다.
“금강의 동쪽이라고 금동이라고 불렸는데, 실제는 과곡입니다.”
옛사람들은 금천을 금강이라고 불렀다. 18세기 우리 지역의 유학자 근품재 채헌은 산북면 석문 강가에 정자를 짓고 저 아래 농청대에서 배를 저어 올라갔다. 그리고 빼어난 아홉 곳의 경치를 구경하며 이를 석문구곡이라 이름 붙였다.
그가 금강이라고 부르자 금천은 자연스럽게 강이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 금강에서 미역을 감으며 놀았다고 했다. 강은 산과 넓은 들 사이를 흐르면서 옥토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풍요를 선사했다. 그리고 빼어난 경관으로 인문학적 풍류를 즐기게 하였다. 그래서일까. 그가 강 같은 사람인 것은.
그는 인천 채(蔡)씨다. 이름은 순홍(舜鴻)이며, 아호는 소사(韶史)다. 소사 채순홍,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분 초대작가이며 권위 있는 동아미술대전 서예부분 대상을 수상한 우리나라 대표 서예가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해 ‘문경문화원’ 개원식 때였다. 개원식을 마치고 1층 로비에서 서예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사람들로 붐비는 1층 로비의 대형 화선지 위에 그가 검은 붓을 들었다.
망설임 없이 일필휘지한 글은 “문경문화창달(聞慶文化暢達)”이었다. 그날 이층 연회실에서 그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 미소와 몸짓에서 무언가 강 같은 평화로움이 전해졌다. 문화원을 나서면서 입구 표지석에 새겨진 글씨가 그의 작품임을 듣고 다시 보게 되었다.
“산명곡응(山鳴谷應)”
어느 날 그가 쓴 글씨 한 점을 사진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의 글씨는 단아하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급류를 흐르는 강속(江速)처럼 힘차고 하늘을 나는 솔개의 날갯짓처럼 날랬다. 그 자유자재함 속에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강 같은 평화로움이었다.
그 강이 우리 지역의 금강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지난 토요일 오후,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서예문화학회의 학술대회가 문경문화원과 문경유스호스텔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인근의 식당에서 대회 회식 자리에 초대되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지역을 위해 많은 일을 하지 못했어요. 기회가 되면 앞으로 더 많이 해야지요.”
하지만, 그가 문경문화원 주최 전국문경새재 휘호대회 심사위원을 오랫동안 맡으면서 이 대회를 권위 있는 대회로 거듭나도록 진력해왔음을 알고 있다. 또한 모교인 문창고등학교를 위해 저 유명한 ‘문창인’이라는 시를 한글 서예글씨에 담아, 후배들의 가슴을 늘 뛰게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이 학술대회도 그러한 애향의 마음에서 비롯된 많은 것 중에 하나 일 뿐일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서예가에서는 문경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같은 학회의 회원인 어느 서예가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리고 소사 선생을 비롯한 청운 김영배 선생 등 적지 않은 서예가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그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자, 이제 서예 퍼포먼스를 시작하겠습니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사회자가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제일 먼저 소사 선생이 붓을 들어 화선지 위에 글씨를 그려내 갔다. 그가 쓴 글은 “문희경서(聞喜慶瑞)” 였다.
그랬다. 멀리 있으면서도, 그는 늘 고향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저 네 글자로 이방인인 회원들에게 우리 문경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쓴 글씨 위로 금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은 끊어지듯 지류가 되기도 하고 실개천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쉼 없이 흐른다.
어느 메쯤 그의 고향마을 금동도 있으리라. 그의 얼굴에 강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저녁별이 강처럼 곱게 흐르고 있었다.
010-9525-1807
|
|
|
|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주간문경을 읽으면 문경이 보인다.” - Copyrights ⓒ주간문경.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주간문경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주간문경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