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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산

2018년 12월 11일(화) 15:50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주)문경사랑

 

“형님, 황장산 갈래요?”

전화기 너머로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의 대화 중 '황장산‘이라는 말에서 갑자기 생기가 나는 듯했다. 산(山)이 주는 어감은 언제나 푸르고 싱싱하다.

’황장산‘은 산과 그 높이와 깊이 그리고 넓이에서 다른 산과 비교가 된다. 황장산의 계곡과 골짜기에서는 원시의 자연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언젠가부터 황장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후배의 말을 듣고 바로 승낙을 했다. 토요일 아침, 공설운동장 주차장으로 나갔다. 산행을 함께 할 일행들을 만나 차를 동로로 향했다.

초겨울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찬 기운을 느끼며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작은 차갓재’로 내려오기로 하고 계곡 쪽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낙엽만 쌓인 산은 시야를 넓게 해주었다. 겨울 산행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겨울 산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에 보이지 않던 속살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때 앞에서 걷던 후배가 뒤를 보고 말했다.

“엄나무가 여기에 있네요.”

길옆에 하늘을 향해 높이 서 있는 나무 두 그루를 가리켰다. 그는 조금 전 엄나무 잎을 보았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엄나무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야생에서 자라는 엄나무는 오래되면 줄기에 가시가 없어져요.”

민간에서 엄나무는 액(厄)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집 대문 쪽에 심는데 잎과 껍질 등은 나물과 약재 등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떨어진 마른 잎만을 보고 나무의 종류를 아는 그의 식견에 탄복하며,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어느 정도 올랐을까. 앞서가던 유일한 여자 분이 지친 기색을 보였다. 그녀를 위해 잠시 쉬기로 했다. 그때 후배가 마른 산머루 한 송이를 우리들에게 건넸다.

“이게 식감이 아주 좋아요. 아이스와인 저리가라죠.”

까만 산머루 열매가 마른 채 달려있었다. 무슨 맛일까 싶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처음에는 아무 맛이 없더니 끝에 단맛이 느껴졌다.

“아이스와인의 시초가 이 산머루처럼 초겨울까지 수확하지 않은 포도로 만든 겁니다.”

아이스와인은 포도를 초겨울까지 수확하지 않은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포도를 수확하지 않고 초겨울까지 얼도록 놔두면 물기가 중발하고 당도만 높은 성분만 남게 된다. 이것으로 담은 포도주를 아이스와인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급와인의 대명사이다.

살펴보면, 겨울 산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봄의 산나물도 여름의 시원한 계곡과 가을의 열매도 겨울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 산에서 우리가 보고 거둘 것은 없다. 이처럼 없다고 생각할 때 산은 황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후배의 말처럼 겨울 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은 적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겨울 산은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능선이 보였다. 곧 정상에 올라섰다. 정상에는 황장산이라고 쓴 표지석이 놓여 있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서 소금강이라고도 일컫는 도락산이 보였다. 크고 작은 회색 암벽들이 황장산을 향해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이웃 산들이 황장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늘어섰다.

황장산 벌재 방향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지금 보호구역으로 산행이 금지되어 있다. 언젠가 그 길이 열린다면, 저 장쾌한 황장능선을 걷고 싶다. 그때가 겨울이라면 아마 오늘처럼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겨울 산을 나왔다.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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