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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65):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16): “독도, 일본 땅이 아니다”

2018년 11월 13일(화) 10:05 [주간문경]

 

 

↑↑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주)문경사랑

 

1877년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에서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명심하라”는 지령문이 내려왔는데도 외무성의 와타나베(渡邊)국장은 울릉도에 해군 함정을 파견해 실상을 조사하도록 한다. 기록을 보면, 와다나베는 울릉도에 대한 욕심을 갖고 있었ek.

일본의 외교관 출신 관변(지리, 역사)학자인 가와카미 겐조(川上健三, 1909~1995, 일본 외무성 조약국 참사관과 주 소련 공사 등을 역임했으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당시에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논리와 자료 등을 만들어 제출함)가 1966년 출간한 <다케시마의 역사지리학적 연구>를 보면, 와타나베가 “조선이 이미 손을 쓴 곳이라면 통치 상황을 조사한 뒤 계획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언급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와타나베는 울릉도가 이미 조선 땅이라고 해도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차지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독도뿐만 아니라 울릉도까지 뺏을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일본 외무성은 1878년, 1880년 등 두 차례에 걸쳐 군함 아마기[天城]호를 울릉도로 파견한다. 아마기는 울릉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울릉도 동쪽 2Km 거리에 있는 죽도[竹嶼島]를 발견한다. 이 ‘죽도’ 라는 이름은 한국인이 붙인 것이다. 일본은 ‘죽도’의 한자인 竹島를 일본식으로 발음해 ‘다케시마’라고 불렀다. 조사를 마친 해군성(海軍省)은 ‘울릉도를 마쓰시마’라고 부르고, ‘울릉도 옆의 작은 섬[죽도,죽서도]은 다케시마’ 그리고 ‘지금의 독도는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라고 기록했다. (리앙쿠르 락스라는 이름은 1849년 동해로 고래[鯨]를 잡으러 왔던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 호(號)가 고래를 잡다가 풍랑을 만나 독도로 피난을 온 뒤 리앙쿠르 락스[暗礁]라고 이름지었다.

이 이름은 지금도 독도를 부르는 이름이 되고 있다. 독도[獨島]를 한국은 ‘Dokdo’라고 쓰고, 일본은 ‘Takeshima’라고 쓰지만, 중립적인 나라에서는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라고 쓰고 있다. 10년 전인 2008년 미국연방정부 기구인 <미국지명(地名)위원회> (United States Board on Geographic Names)는 Liancourt Rocks로 표기한 우리 독도의 영유권을 ‘주권 미지정 지역’ (Undesignated Sovereignty)으로 표기해 우리국민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당시 우리 정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아들여 일주일 만에 독도의 영유권을 ‘대한민국 South Korea’ 또는 ‘공해 Oceans’라고 수정한 적이 있다.)

이제 18세기 이후 200년 가까이 잔잔하던 현해탄과 동해 바다에 19세기 중반부터 물결이 일기 시작한다. 한 개인의 야심이나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가 개항한 뒤 새로운 곳으로 나가고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제일 가까운 지역에 우리나라가 있었고, 러일전쟁 중인 일본에게 독도는 전략적 핵심 이익에 해당했다. 일본 내에서는 중국[淸]과 러시아, 이 두 나라를 넘어서야 자신들이 아시아의 맹주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이 점점 강해지던 시대였다.

또 다른 한편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인 그 당시 일본 외무성 안에는 ‘독도를 조선 영토로 간주하는 에도막부[江戶幕府]의 입장을 계승’하려는 의견과 ‘독도를 일본 땅으로 왜곡하고 울릉도까지 차지’하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일본 정부는 후자 쪽의 노선을 택해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縣)에 편입시킨 것이 된다. 외무성을 비롯한 일본 전체의 분위기가 사실을 왜곡하더라도 땅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고 또 섬을 한 개라도 더 차지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자는 국가주의(國家主義)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이 무렵 일본을 휩쓸고 있는 정한론(征韓論)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일반인들도 그럴진대 외무성을 비롯한 메이지 새 정부의 엘리트 관리들은 일반인보다도 그런 성향이 더 심했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측할수 있겠다.

태정관(太政官)에서는 1877년 “마쓰시마가 독도이고 이 섬이 일본 영토가 아님을 명심하라”는 지령을 내렸지만, 해군성은 ‘울릉도가 마쓰시마[松島]이며 독도는 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라고 기록했다. 이 조사 사업에 들인 예산이 막대한데다, 신생 해군성으로서는 ‘뭔가 한 건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었다. 그렇지만 해군성도 ‘독도[리앙쿠르 락스]는 조선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7세기 때부터 천여년 간 계속돼온 태정관(太政官) 제도는 메이지유신이 시작된지 십여년 만인 1885년 폐지되고, 일본 정부는 내각제도로 개편된다. 이때부터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를 부르는 방식-명칭-이 바뀌었다. 해군성이 붙인 이름이 오히려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일본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울릉도에 조사 목적의 군함을 파견한 1880년 이후 일본 해군성 수로부(水路部)는 해양 안내서인 <수로지(水路誌)>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일본은 섬 나라로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있고, 해군성은 일본의 해양 방위 뿐만 아니라, 해양에 있는 영토를 관리하는 중요한 기관으로 부상해 자리를 굳힌다. 때문에 해군성에서 독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느냐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수로지는 이름 그대로 뱃길[水路]의 안내를 위한 항해에 필요한 예비 지식을 제공하고 항해의 길잡이 구실을 할 각종 내용들 즉 지리, 국정, 인문, 연안의 지형, 기상, 항로 표지, 통신, 무역상황 등이 수록돼 있는 책이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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