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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38): 아시아의 영토분쟁-센카쿠열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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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3일(화) 08:57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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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부터는 한국-일본-중국-러시아 등 4 나라가 얽혀있는 동 아시아 쪽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이 지역에서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센카쿠 열도> 문제가,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는 <쿠릴 열도> 문제가, 그리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독도> 문제가 얽혀있다. 먼저 일본과 중국 사이의 영토분쟁부터 살펴본다.
<센카쿠 열도, 尖閣列島>는 동중국해의 남서부 즉, 대만 북쪽 치롱(基隆)항에서 북동쪽으로 170Km, 중국 푸젠성(福建省) 푸저우(福州)시에서 동쪽으로 350Km,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冲繩)현의 제일 서쪽에 위치한 이시가끼(石垣)시에 소속돼 있으나, 그 거리 또한 서쪽으로(중국 쪽으로) 170Km나 된다. 거리로 보면 대만에 속한 것 같기도 하고, 오키나와에 속한 것 같기도 한 이 섬들은 사실 시대 상황에 따라 그 두 나라[王國]에 속하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니까 지금처럼 영유권 분쟁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센카쿠열도는 1885년 한 일본인이 발견(?)했다고 신고한 뒤부터 1940년까지 수백 명의 일본인들이 살면서 생선 가공 공장도 가동하고 했으나, 현재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다.
센카쿠열도는 5개의 무인도와 3개의 암초로 구성된 군도(群島, 列島)로, 면적은 5개 섬을 다 합쳐서 7평방Km (약 210만평)가량이다. 앞에 설명한대로 중화인민공화국(공산 중국), 중화민국(대만), 일본 등 세 나라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나 일본이 실효 지배하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이 열도를 ‘산 봉우리가 뾰족한 섬들’이라는 뜻으로 <피너클 제도, Pinnacle Islands>라고 부르는데, 1884년 영국 해군이 이 이름을 붙였다.(5개 섬의 최고봉은 각각75~362m로 뾰족하게 솟은 형태이다) 일본이 현재 부르는 이름 <첨각(尖閣)열도, 센카쿠 열도>는 이 영어 이름에서 뜻을 옮겨와 붙인 것으로 보인다. 즉, 현재 실효 지배하고 있는 일본도 1884년까지는 이 섬의 존재도 모르고, 이름도 제대로 짓지 않고 있었던 것을 말해 준다.
130만평 정도 되는 가장 큰 섬의 이름이 일본에서는 <우오쓰리 섬>(어조도 魚釣島)인데, 중국에서는 댜오위따오(조어도 釣魚島)라고 부른다. 서로 앞 뒤 글자를 바꿔서 부르는 셈이다. 일본은 길이 3.5 Km에 폭 2Km, 최고봉 362m 로 제법 큰 이 섬에 헬기장, 기상관측대, 등대 등을 설치했고, 다른 섬 하나에도 등대를 설치해 운용하면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두 번째 큰 섬은 구바 섬(久場島, 중국: 황웨이섬, 黃尾島)로 32만평 정도, 세 번째는 미나미코 섬(南小島, 중국명:난샤오섬, 南小島)으로 14만평 정도, 네 번째가 기타코 섬(北小島, 중국명:베이샤오섬, 北小島)으로 10만평 정도, 다섯 번째는 다이쇼 섬(大正島, 중국명:츠웨이섬, 赤尾嶼)으로 만 8천평 정도이고, 나머지 3개는 이름 그대로 암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현재 일본 오키나와(Okinawa)현(縣)인 <류큐왕국(琉球王國)>은 1372년 명(明)에 복속돼 조공(朝貢) 관계가 됐다. 이후 1403년 출판된 ‘순풍상송(順風相送)’이라는 명 나라 사료에 <센카쿠 열도>는 ‘조어서(釣魚嶼)’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고, 중국에서 <류큐>를 오갈 때 중간 정박지 역할을 했다고 기록에 남아있다. 청 나라 때인 1863년에 작성된 세계지도(皇朝一統輿地全圖)에는 이 열도가 푸젠성(福建省)에 부속한 ‘댜오위타이군도’(釣魚臺群島)로 표시돼 있다. 이 때까지는 중국과의 인연이 짙어 보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제국주의 일본은 1879년 <류큐왕국>을 병합(倂合)시켜, 오키나와현(縣, 오키나와현은 제일 큰 섬인 오키나와를 비롯해 백 수십개의 섬이 동서 천 Km, 남북 400km의 범위로 흩어져있다.)으로 삼았다. 1885년 민간인인 코가 다츠시로(古賀辰四郞)가 ‘센카쿠 열도’를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일본 정부는 이 섬을 무주지(無主地)로 간주해 청일전쟁 와중인 1895년 1월 14일 각의(閣議)의결을 거쳐 자기 나라의 땅으로 편입 조치한다. (이 장면은 10년 뒤인 1905년 일본이 우리 땅 독도에 대해 조치를 취할 때 다시 보게된다) 일본은 청일전쟁(淸日戰爭, 서양에서는 ‘제1차 中-日전쟁’이라고 부름)에서 승리한 뒤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대만과 그 부속 도서를 차지하게 된다.
이에따라 ‘댜오위따오’(센카쿠열도)는 국적이 중국에서 일본의 오키나와현(縣)으로 바뀐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말 미군은 일본 본토 공격을 위해 오키나와를 점령한 이후 동서 냉전 시기 동북아시아의 핵심적인 군사기지로 활용하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한다. 아직도 미군 기지가 많다. 일본은 <센카쿠열도>가 오키나와에 딸린 섬이니까, 미국이 오키나와를 반환할 때, 센카쿠열도도 함께 일본으로 넘어왔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센카쿠 열도는 표면적으로는 중국측과 일본 사이의 영유권 분쟁이지만, 여기에 일본과 동맹관계에 있으며 ‘태평양 국가’(Pivot to Asia)임을 선언한 미국이 ‘해로[通航]의 자유’와 ‘동맹의무의 준수‘를 이유로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어, 갈등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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