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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淸)나라는 왜 망했는가?-29. 혁명의 시대(4)

신해혁명

2018년 11월 12일(월) 16:18 [주간문경]

 

보로운동(保路運動)으로 점화된 철도 국유화 반대 시위는 청 중앙정부의 강력한 진압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잠시 주춤하는 듯했지만, 쓰촨성, 후베이성 지역의 움직임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그러던 중 우창(武昌)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철도 국유화 반대 시위는 양상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대로 쓰촨성 청뚜시 항의 양상이 심각해지자 중앙정부는 우창에 주둔하고 있던 군인들(湖北 新軍)을 쓰촨성의 시위 진압에 동원했습니다. 그런데 우창에 남아있는 신군 내에는 혁명파가 침투해 조직 작업을, 흔히 말해서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우창 시내의 러시아 조계(租界)에서 화약, 격문 등을 준비하다가 폭발 사고로 지휘부 일부가 체포되는 등 우여 곡절 끝에 거사일을 앞당겨 10월 10일을 "청조 타도(淸朝 打到)"라는 혁명의 횃불을 올립니다. 이들은 우창(武昌)성을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이어서 한양(漢陽)과 한커우(漢口) 등 우한3진(武漢 3鎭 : 인접해 있는 우창, 한양, 한커우는 1927년 '우한(武漢)'으로 합쳐져 하나의 도시가 됩니다)을 점령하고 후베이(湖北) 군정부(軍政府) 수립을 선포합니다.
중국의 역사를 바꾼 이 거사는 부르는 이름이 여럿입니다. 1911년이 신해년(辛亥年)이어서 <신해혁명> 또는 우창에서 일어난 첫 번 째 혁명이어서, <제1차 혁명>또는 <우창봉기(烽起)> 라고 말하고, 일어난 날이 10월 10일이어서 중국이나 대만에서 이 날을 "쌍십절(雙十節)"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나 봅니다. 우창봉기 이전에 각지에서 수십 차례나 시도한 무장 봉기나 혁명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우창봉기>는 때가 무르익어서 중국 각지에서 호응이 잇따라, 한 달 만에 중국내 13개 성(省)에서 봉기가 일어나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오직 베이징에서 가까운 하북성, 하남성, 산동성만 예외였습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혁명의 물결이 중국을 휩쓸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청나라의 지배에 대한 반감이 중국 백성들 사이에 깊게 박혀 있었고, 혁명파들이 각 지역의 군대 -신군- 내에 손을 대 혁명 사업을 미리 해 놓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각 지역에서 일어난 혁명 -봉기-은 중국동맹회 등 혁명 세력이 통일된 계획에 의해 일으킨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불만세력들이 해당 지역에서 각각 무장 봉기를 일으켜 성공한 것이기 때문에 통일된 이념이나 지휘체계를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해혁명>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독립을 선언한 각 성의 대표들은 11월 15일 상하이(上海)에 모여 성(省) 대표회를 우창(武昌)에 설립하기로 하고, 임시정부 구성안을 발표하는 한편, 당시 청나라의 군사 실권을 가진 위안스카이(袁世凱)가 혁명세력에 가담한다면 그를 임시 총통에 추대할 것을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위안스카이는 결코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각 성 대표 상당수가 혁명파라기보다는 온건한 입헌군주파가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이 무렵 중국 혁명세력의 상징인 손문은 혁명 자금 모금을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는 "서구 열강들이 간섭하지 않아야 혁명이 성공한다"는 평소 신념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를 차례로 방문해 이들로부터 "불간섭" 다짐을 받고 12월 21일 홍콩을 거쳐, 12월 25일 상해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12월 29일 남경에서 임시대총통 선거가 실시되고, 손문은 압도적인 지지로 임시대총통에 선출됐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1912년 1월 1일 난징(南京)에서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는 이름의 혁명정부가 선포됐습니다. 드디어 2천년 이상 지속돼 왔던 중국에서 절대군주제도가 무너지고 최초의 근대적인 공화정(共和政) 정부가 들어서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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