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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천하로 끝난 변법자강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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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2일(월) 15:24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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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00일 천하로 끝난 변법자강운동
천하의 중심 국가, 중국(中國).
나라 이름까지 그렇게 지었지만, 2차례의 아편전쟁과 청불, 청일 전쟁 등 4차례의 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이제 아주 초라해졌습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등 열강 세력들이 이권을 나누어 가졌고, 이제 이들 외국의 반식민지(半植民地) 상태로 전락했습니다.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난 뒤 청나라는 외국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국력을 키우자는 양무운동(洋務運動)에 30년 이상(1862~1895) 심혈을 쏟았지만, 청불전쟁과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양무운동의 실패를 인정해야 했습니다. 반면에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일본의 근대화 작업 즉 메이지유신(1868)은 성공적이었음이 청일전쟁에서 판명이 납니다.
그래서 서태후(西太后,1835~1908)와 이홍장(李鴻章, 1823~1901) 등이 중심이 돼 수행한 청일전쟁의 결과 상대적으로 그 반대파라고 할 수 있는 광서제(光緖帝, 재위 1874~1908), 장지동(張之洞, 1837~1909)등 황제파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청 내부에서도 "이제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같이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해서 나라를 살려야한다"라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의 중심인물이 강유위(康有爲,1858~1927), 양계초(梁啓超, 1873~1929) 등이었습니다. 1895년 서른이 훨씬 넘어 과거에 급제한 강유위 등은 진사가 되어 관료의 길에 들어서서 자신들의 생각을 펼쳐 나갑니다. 개혁파들은 서양 선교사 등이 상해에서 발행하는 <만국공보> 등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 입헌정치, 유럽의 학문과 교육제도 등 서양의 큰 흐름을 습득하고, 서구사상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던 중 1897년 독일이 교주만을 점령하는 등 청 나라에 다시 먹구름이 끼자 강유위는 황제에게 상소를 올리게 됩니다. 변법(變法) 즉 나라의 법(法)과 제도(制度)를 바꾸자는 <변법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광서제는 강유위 일파의 개혁안을 실천에 옮기고자 했습니다. 1898년 4월 23일 광서제는 100여개 항목의 변법을 추진하겠다는 선언을 합니다. 역사에서는 이를 제도의 개혁을 통해 나라를 강하게 한다는 '변법자강운동(變法自强運動)' 또는 무술년에 있었다고 '무술개혁(戊戌改革)'이라고 합니다.
그 중심적인 개혁 내용은 과거제도의 개혁, 새로운 학교제도의 도입, 신문과 잡지의 발행, 인재 등용의 변화, 농공상업 진흥, 우편제도의 도입, 육해군의 근대화 등입니다. 광서제는 변법파의 활동에 눈살을 찌푸리는 고위 관리들을 해임하고 9월에는 이홍장도 총리아문대신에서 해임합니다. 이러한 광서제의 과감한 조치는 서태후와 그 일파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게 돼, 다시 역풍이 불어 닥칩니다. 9월 21일 아침 일찍 서태후는 광서제의 침실로 찾아가 "모든 왕실의 일과 국가의 정사를 자신이 담당 하겠다"고 선언하고는 광서제를 유폐시킵니다. 당연히 개혁파들은 숙청되지요. 강유위 등은 보수파의 공격을 피해 일본으로 도망치듯 망명을 떠났으며, 담사동(譚嗣同, 1864~1898)등은 붙잡혀 처형당했습니다. 무술개혁이 시작된 지 103일 만에 개혁운동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보수파의 이러한 반격을 역사에서는 무술정변(戊戌政變)이라고 합니다만, 생각해 볼수록 아쉬움이 듭니다. 개인의 삶이든 나라의 일이든 "그 때 이렇게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대목을 만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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