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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한 청 제국 -화신의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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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2일(월) 15:22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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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노쇠한 청 제국 -화신의 부패
중국 역사를 쭉 보면 주요 왕조나 나라가 200~300년을 주기로 바뀌어 오면서 이들이 쇠퇴해 망할 때는 공식 같은 것이 있다고 초반에 말씀드린 거 기억나세요? "어느 한 왕조의 후기에 오면 내부의 부패나 모순이 심해져서 반란이나 내전(외국과는 전쟁)이 발생하고, 이를 계기로 신흥세력이 등장하고, 정권이 교체되면 그 새 왕조가 개혁정책을 펴고......" 그런데 사실 이 공식은 -부패, 전쟁, 내전- 중국뿐만 아니라 지구상 어느 나라나 왕조가 수명을 다할 때 마다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과거에서 미래를 배운다"라는 말도 하는 거 같습니다. 淸 나라도 건국(1616)한지 오래 지나면서 노쇠한 모습을 보입니다. 부패도 심해졌습니다. 대표적인 부패 사례를 하나만 알아보겠습니다.
청나라의 강토(彊土)는 건륭제(乾隆帝, 재위 1735~1795)의 할아버지인 강희제(康熙帝, 재위 1661~1722)때 크게 확장됐는데, 건륭제도 재위 기간 동안 10차례의 해외원정과 내부 반란 진압 전쟁을 승리로 장식해 국토를 더 늘렸습니다. 따라서 새로 편입된 지역의 새 국민을 포함해 인구도 크게 늘었습니다만, 이를 다스리는 국가 조직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청나라가 최고의 국력을 자랑하던 건륭제 때의 일입니다. 화신(和 , 1750~1799)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잘 생겼는지 '자살한 후궁이 남자로 환생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운 자태'를 지녔다고 합니다. 25살 때 건륭제의 눈에 띄어서 계속 총애를 받았습니다. 관직도 승승장구, 황제의 궁성인 자금성(紫金城) 안에서 말을 타고 다녀도 되는 유일한 신하로 까지 총애를 받습니다. 당연히 화신은 황제 다음의 제2인자로 행세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권력을 세상(사람들)은 가만두지 않습니다. 꼭 부패시키고 타락시킵니다. 그러니까 모든 민원이나 청탁이 화신에게로 밀려들었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나라는 커졌는데 즉, 다스릴 땅과 백성이 늘어 났는데도 관리의 숫자는 늘지 않아, 사람들은 돈을 싸들고 관직을 구하러 다닙니다. 어디로 몰리겠습니까? 게다가 화신은 1790년(화신 40세 때) 건륭제와 사돈의 관계를 맺습니다. 화신의 아들과 건륭제의 막내딸(和孝公主)이 결혼한 것입니다. 얼마나 건륭제의 마음에 들었는지 이해가 가시지요?
건륭제는 재위 60년을 채우고는, 할아버지(강희제 61년) 보다 더 오래 재위하는 불효를 저지를 수 없다며 그만 물러납니다. 그러자 열다섯째 아들이 뒤를 잇지만(가경제, 재위 1796~1820), 건륭제는 4년을 더 태상황제(太上皇帝)로 복무하고는 세상을 떠납니다. 건륭제가 물러난 뒤부터 화신의 부정부패에 대한 상소가 줄을 잇습니다. '어느 자리를 누구에게 얼마에 팔아먹었다' '황하의 홍수 방지를 위한 제방 공사비를 횡령했다' '백련교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하는 전쟁비용도 떼먹어, 병사들이 식량도 없고, 돈이 없어 전투를 못하고 있다' 등등 상소가 줄을 잇자, 가경제(嘉慶帝)는 화신의 재산에 대한 조사를 명령한 뒤 보고를 받고는 놀랍니다. 화신의 재산은 줄잡아 은 40억냥! 청나라 14년치 예산이었습니다(거의 100년 뒤인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일본에 배상해준 돈이 은 2억 3천만냥인데, 청나라는 이 돈도 없어서 유럽 열강들에게 이권을 팔아서 배상했다고 한 이야기 기억하시지요?). 그래도 가경제는 처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아버지인 건륭제가 세상을 뜨자, 화신의 부정부패 문제에 직접 칼을 댑니다. 사형이냐, 자결이냐? 화신은 1799년 49세를 일기로 자살을 택합니다. 그리고 1800년이 밝아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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