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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 그 뒷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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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2일(월) 15:21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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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청일전쟁 - 그 뒷처리
청일전쟁은 불과 9달 만에 끝났지만, 청나라는 일본한테 땅도 빼앗기고 엄청난 전쟁배상금(당시 일본 4년치 국가예산)도 물어주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청불(淸佛), 청일(淸日) 두 차례의 전쟁에서 청나라의 밑천이 다 드러나 서양 열강은 노골적으로 청나라 분할 작업에 들어갔고, 일본은 더욱 적극적으로 조선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해, 러시아와의 충돌이 가시화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부동항(不凍港)을 얻기 위해 만주로의 진출을 노리던 러시아는 청일전쟁의 결과로 뤼순항을 포함한 랴오둥반도가 일본에게 넘어가자, 그만 인내력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자기들이 점찍어 놓은 땅을 일본이 가져가 버리자, 닭 쫓던 개 뭐 쳐다본 격이 된 것입니다. <시모노세키조약>이 체결된지 6일이 지난 1895년 4월 23일 일본에 주재하고 있는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3 나라 대사가 일본 외무성을 방문합니다. 이들은 하야시 다다스(林董) 외무차관에게 "랴오둥 반도를 일본이 소유하는 것은 淸의 수도(北京)에 대한 항구적인 위협일 뿐만 아니라 조선의 독립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랴오둥 반도를 반환하라고 압력을 넣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이들의 압력에 밀려 3천만냥의 배상금을 추가로 받고(총 2억 3천만냥) 랴오둥 반도를 청나라에 돌려주게 됩니다. 일본은 이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조선, 철강 등 중화학공업을 일으키는데 투자합니다. 이것을 역사책에서는 '3국간섭'(Tripartite Intervention)이라고 하고, 이를 주도한 나라가 러시아입니다. 일본은 '3국간섭'을 주도한 러시아 때문에 전리품을 뺐긴데 대해 앙심을 품게 되는데, 이것은 나중에 러일전쟁(露日戰爭, 1904~1905)의 직․간접적 원인이 됩니다.
청나라의 문제는 계속됩니다. 청나라는 일본의 4년치 예산에 해당하는 큰 돈을 전쟁배상금으로 물어 줘야 하는데, 전쟁을 치르느라 국고가 텅텅 비어 돈이 없었습니다. 이에 제국주의 열강들은 청나라에게 "돈을 빌려 줄 테니, 그 대가를 달라"고 협상을 벌여 조차지(租借地)의 확대나 철도 부설권 등을 대신 받아냅니다.
독일은 1897년 자국 선교사가 살해됐다는 이유로 산동반도 남쪽의 자오저우(膠州)만을 점령하고 조차합니다(독일은 이곳에 靑島-칭따오-시를 건설하게 됩니다). 러시아는 3국간섭을 주도하고 청일전쟁의 종전을 중재해 주었다는 이유로 동청(東淸)철도(하얼빈(哈爾濱)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만저우리(滿州里) 오른쪽은 수이펀허(綏芬河)까지이고 남쪽으로는 창춘(長春)을 거쳐 다렌(大連)까지 이어지는 만주의 중심철도) 부설권을 따내고, 1898년에는 뤼순(Port Arthur)과 다렌항을 조차합니다. 영국은 1898년 장강유역에서 미얀마(Burma)에 이르는 철도 부설권과 장강 유역을 다른 나라에게 조차하지 않는 다는 약속에 이어 홍콩 건너편의 신계(新界)를 조차하고, 일본은 타이완 섬 건너편의 푸젠(福建)성을 다른 나라에 할양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중국 전체를 놓고 열강들의 세력권을 따져 보면 제일 위쪽 랴오둥 반도와 만주는 러시아가, 산둥성은 독일이, 양자강 유역은 영국이, 푸젠성은 일본이, 그리고 남쪽의 윈난. 광둥, 광서 지방은 프랑스가 각각 자신의 세력권으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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