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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라 삼각산아

2018년 07월 17일(화) 17:52 [주간문경]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주)문경사랑

 

중국의 만주 땅에 세워진 청(淸) 나라의 태종(太宗)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조선을 침략해 왔다. 인조(仁祖) 14년인 1637년 12월이었으니 강이 얼어 군사가 건너오기도 쉬웠다.

우리 임금은 신하들을 데리고 가까운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들어가 성문을 닫고 항전하다가 먹을 식량도 다 떨어져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이듬 해 정월에 임금 스스로 산성을 나가 삼전도(三田渡) 들판에서 청태종에게 항복을 하였다. 이를 병자국치(丙子國恥)라 하고 이 전쟁을 병자호란(丙子胡亂)이라 일컫는다.

전투 중에 화친을 반대한 척화신(斥和臣) 가운데 대표자인 이른 바 삼학사(三學士)로 불리우는 화포(花浦) 홍익한(洪翼漢, 1586~1637)과 휴계(休溪) 윤집(尹集, 1606~1637) 및 추담(秋潭) 오달제(吳達濟, 1609~1637)를 자기 나라로 끌고 가 살해하였다.

그리고 항복을 받은 후에도 주전파(主戰派)의 대표인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과 봉림대군(鳳林大君)과 소현세자(昭顯世子) 등 많은 사람을 청나라 수도인 심양(瀋陽)으로 끌고 갔다.

소현세자는 8년간 인질로 잡혀 있었고, 봉림대군은 후일 환국하여 1649년에 조선조 17대 임금이 되니 효종(孝宗)이다. 효종은 병자의 국치를 씻으려고 재위 10년간 북벌(北伐)의 정책을 추진했으나 실현을 보지 못한채 눈을 감고 말았다. 참으로 애닲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예조판서(禮曹判書)로 있을 때 병자호란을 당한 김상헌은 계속 싸우기를 주장하다가 청의 미움을 받아 항복 후 청나라로 잡혀가게 되었다. 그의 나이 68세이던 1638년에 한양(漢陽)을 떠나면서 자기 심경을 토로한 시조 한 수를 남겼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여기서 삼각산은 서울의 진산(鎭山)인 북한산(北漢山)의 옛 이름이다. 패망한 나라의 노재상(老宰相)으로 적국에 볼모로 잡혀가면서 다시 조국의 산하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참담한 심경을 담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그는 심양에 억류된지 3년 만인 1641년에 71세의 나이로 환국하여 다시 삼각산과 한강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귀국 후 좌의정의 벼슬까지 지내다가 83세에 운명하였다.

이 시조 이외에도 병자호란과 관련된 시조가 많이 지어졌으니, 그 대표적인 것만 보아도 주화론자(主和論者)인 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 1572~1645)이 전쟁의 비참함을 묘사한 ‘이별하던 날에’, 삼학사의 한 사람인 홍익한이 위국충성을 노래한 ‘수양산 내린 물이’, 송암(松巖) 이정환(李廷煥, 1613~1673)이 국치를 당하고도 죽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하는 ‘풍설 석거친 날에’, 그리고 봉림대군의 볼모로 잡혀 갈 때의 심경을 담은 ‘청석령(靑石嶺) 지나거냐’와 볼모로 잡혀 있으면서 원한을 달랜 ‘청강에 비 듯는 소리’ 등이 있다. 그 전쟁의 처절함과 민족적 비통함, 그리고 피해와 후유증이 얼마나 컸던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시가였던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담임선생님들로부터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외국을 침략한 적이 없는 착한 백의민족이다’ 라는 말씀을 듣고 이런 착한 백성의 나라에 태어난 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가서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착해서 침략 안한 것이 아니라 힘이 약해서 침략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침략만 당하고 지배만 받아온 허약하고 불쌍한 역사를 가진 나라임을 알고서는 이 나라에 잘못 태어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국가의 위기 때 마다 숱한 충신․열사가 나오고 슬픈 시와 애절한 노래와 한 맺힌 시조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그런 사람과 그런 시가 나올 기회가 생겨나지 않도록 강력한 국가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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