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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고수장(山高水長)

- 심경 황규욱 선생의 영전에 바치며 -

2017년 09월 09일(토) 08:26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주)문경사랑

 

9월의 첫째 주 토요일, 음력 칠월 열 이튿날은 문경새재 달빛사랑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그날 새재의 달밤은 초가을의 서늘함과 은근함을 지녔을 터이다. 그 달빛의 유혹에 이끌려 문경새재로 갔다.

접수대 앞에는 사람들로 가득하였고 어느 방송사에서는 행사의 전 과정을 촬영하는 중이었다. 우리 지역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널리 홍보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문경새재 달빛사랑 여행은 문경문화원에서 주관하고 있다.

그때였다. 휴대폰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문경문화원 부원장 심경 황규욱 서예가의 부고(訃告)였다. 처음에는 막연히 잘못 본 것이려니 했다. 혹여나 하는 생각에 다시 보았으나 그의 부고가 틀림없었다. 황망하였다.

얼마 전이었다. 그가 머무는 산북면을 지나게 되었다. 경북문화재자료 제236호인 장수황씨 종택이 보였다. 그는 조선시대 명재상이었던 황희 정승의 22세손으로 이 종택의 주인이다.

그 무렵에, 그를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느껴졌었음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소도시의 우리 지역문화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와 영향 그리고 역사적 상징성과 문화적 브랜드 가치는 실로 엄중하기에 그를 더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성취는 생래적이거나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성취는 생래적인 면이 크다. 황희정승의 증손자 사정공 황정의 종손이라는 태생적 연(緣)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빚어온 가양주 호산춘(湖山春)은 역사적 사실과 함께 더 빛을 발한다. 그가 여기에서만 머물렀다면 종택을 보존하는 여느 종손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교사였던 그는 서예에 천착(穿鑿)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서예대전에서 십 여회 이상 입상하는 등 ‘국선초대작가’와 ‘한국서예협회 초대작가’라는 명필가로서 이름을 높였다. 그것은 그의 자발적 성취의 결과였다. 그리고 지역의 후학들을 지도하여 중앙무대에서 그들이 훌륭한 서예가가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그는 우리 지역의 관공서와 여러 단체와 건물 등에 글씨를 쓰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그의 글씨는 적지 않다. 어쩌면, 그의 역할은 조선중기 우리 지역의 유학자 부훤당 김해에 못지않을 듯하다.

당대의 성리학자 정종로가 부훤당에 대한 행장(行狀)을 적은 글에서,
“크고 작은 유림 문자 대부분을 공(公)에게 부탁하여 지었으니, 그 어휘가 굳세고 바르며 담긴 뜻이 명백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아마, 그의 행장을 적는다면 부훤당의 저 말로 대신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전국의 서예가들이 보낸 근조화환으로 가득했고 그를 애도하는 많은 서예가와 지역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우리지역 출신의 세계적인 한국화가 임무상 화백 또한 그의 소식을 듣고 탄식했다. “그의 작품에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 글씨가 보입니다. 정말 훌륭한 서예가입니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인 심천 이상배 화가는 그를 기리는 만장(輓章)에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고 적어 곡서(哭書)했다.

조문기간 동안 스승의 옆자리를 지킨 애제자, 문경문화원 현한근 원장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사(哀詞)했다.

“선생님은 우리 지역문화의 큰 별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분을 어디에서 다시 뵐 수 있을지 슬픔이 큽니다.”

문득, 문경문화원에서 발간하는 간행물 ‘문경문화’ 제105호에 실린 그의 글씨가 떠올랐다. 상형의 문자체로 일필휘지, 간결하게 쓴 ‘산고수장(山高水長)’이다. 굳센 산세와 높이 솟은 성곽, 힘차게 뻗은 강의 줄기, 유장하게 이어지는 길의 형상을 문자화한 작품이었다.

마치, 그가 떠나면서 우리들에게 자신의 뜻이 산처럼 높았고, 지역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물처럼 끊어지지 않았음을 웅변하는 듯했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고 했다. 돌아가는 그 한 곳을 모르지만 이제 이 글로 그의 부재(不在)를 달래본다. 삼가 재배(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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