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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실 그리고 도실재 너머 - ①

2017년 03월 17일(금) 17:30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대구지검 상주지청

ⓒ (주)문경사랑

 

다리를 건넜다. 어느 때나 이 다리를 바라보며 길을 지날 때마다 저 다리 너머의 마을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아니 저 너머에 마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 마을을 알게 된 것은 임무상 화백을 알고 부터였다. 다리 옆 표지석에는 읍실이라는 마을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행정명으로는 우곡1리이다.

읍실은 임화백이 나고 자랐던 마을이다. 그는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세계적인 한국화가이다. 그의 작품에는 산과 소나무 그리고 달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곡선이 그림의 주요 화법이 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린隣(Rhin) - 곡선공동체미학’이라고 즐겨 부른다. 어렸을 때 보았던 초가마을과 구릉 같은 산 능선의 소박함과 정겨운 이웃의 모습들이 바로 아름다움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곡선에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내 고향 산북면 읍실은 내 그림의 모태이다. 그곳은 사방으로 산이 둘러쳐져 있고 하늘만 쳐다보는 오지 중에 오지마을이다. 오십여 호의 초가마을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정답게 살아가는 가난한 산촌, 그게 내 고향이다.”

그곳이 궁금했다. 그래서 그의 고향마을을 찾기로 하였다. 다리를 지나 왼편 포장도로로 1.5킬로미터 정도 올라가니 마을이 나왔다. 여느 산골의 모습처럼 낯익었다.

이른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 신록은 소식도 없다. 산으로만 둘러싸인 마을은 스산하고 입구를 지키는 당산나무에는 액(厄)을 막기 위해 두른 금줄이 걸려 있었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600여 년 된 느티나무이다.

입구 왼쪽에는 평해 황씨 문중 소유인 옥연정(玉蓮亭)이라는 정자가 한가한 나그네를 맞이하며 따뜻한 볕을 쬐고 서 있다. 마을회관 앞에는 주민들 몇몇이 그 볕을 나누어 쬐며 앉아 있다.

“새벽에 동틀 무렵 눈을 뜨면 들창문에서 서서히 밝게 빚어 나오는 청량한 맑은 빛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고, 문창호지 위에 그려지는 갖가지 형상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폈던 아름다운 유년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이 내가 지금 화가가 된 계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임무상 화백은 과거의 이미지를 현재에 펼치고 있다. 그가 새벽에 보았다는 ‘청량한 맑은 빛의 들창문’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마을 어디에도 유년 시절 그의 들창문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만, 옛집 같은 어느 집 창호문 만이 바람에 흔들릴 뿐이다.

밭에서 일을 하고 있던 노인이 허리를 펴고 있다. 그리고 정처 없는 나그네를 보며 장난스럽게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밭가에 노란 꽃이 두 송이 피었다. 샛노란 맑게 피어난 복수초(福壽草) 꽃이었다. 봄은 노인의 얼어붙은 가슴에도 찾아온 모양이다.

문득, 이 작은 산촌 마을에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나고 자랐다는 임화백의 말이 떠올랐다.

“바로 이웃집에서 같이 자랐어요. 엄종선 감독이라고. 90년대 초, ‘만무방’이라는 영화로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영화 ‘변강쇠’ 감독이기도 하죠.”

‘만무방’은 6.25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배우 윤정희는 이 영화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읍실은 6.25 당시 국군 양민학살이 있었던 산북면 석달마을과 멀지 않은 마을이다. 엄 감독은 자신의 성장체험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예, 맞습니다. 임무상 화백과 엄 감독은 우리 마을 출신으로 같이 자랐어요.”

마을 새마을 지도자였던 주민 임상배씨가 확인하듯 말한다. 마을 뒷산을 보았다. 굴봉산이다. 산 아래 고개는 도실재이다. 도실재 너머에는 세계적 희귀습지로 확인된 습지가 있다.

학문 용어로 돌리네(Doline) 습지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화가와 영화감독이 이 읍실에서 나왔듯이, 언젠가 도실재 너머 습지 또한 세계적 유명 습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크다.

읍실에도 봄이 왔다.

(2편에 이어집니다.)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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