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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 명품축제 문경전통찻사발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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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 우수축제, 유망축제, 우수축제, 최우수축제 거쳐 대한민국 대표축제 지위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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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11일(수) 13:05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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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문경시 관광진흥과 직원들이 문경전통찻사발축제가 대표축제로 선정된 소식을 접하고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 ⓒ (주)문경사랑 | | 문경전통찻사발축제가 2017년도 대한민국 대표 문화관광축제에 선정됐다.
1999년 시작해 올해 18번째다.
문경전통찻사발축제는 5년 연속 최우수축제에 머물렀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대표축제 지위에 올랐다.
◆전통 찻사발의 본향
문경지역이 찻사발로 널리 알려진 것은 예로부터 민요(民窯) 중심의 많은 도요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도 문경지역은 백두대간 중심에 있고, 도자기 제작에 적합한 양질의 사토와 땔감이 풍부해 도자 제작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문경에서 발견된 가마터는 모두 82개. 가장 오래된 것은 동로면 노은리와 간송리 일대에서 발견된 12세기 청자 가마터다.
이밖에도 가은읍 완장리에서 14~15세기 청자가마터, 동로면 생달리와 문경읍 관음리 등에서 16~19세기 분청사기 가마터가 발견됐다.
문경의 도자기는 고려초 청자에서부터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900여 년의 세월을 이어왔다.
한 지역의 도자기 생산이 이처럼 장구한 세월 지속돼온 사례는 드문 일이다.
문경은 지금도 발물레와 전통 장작가마인 망뎅이가마로 도자기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타 지역과 구분된다.
망뎅이가마는 흙뭉치를 촘촘히 박아 만든 전통가마다.
170년 전인 1843년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문경읍 관음리 망뎅이가마는 현존하는 전통가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2006년 경북 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이러한 이유로 문경도자기는 역사성과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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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외국 도예작가들이 지난 축제 때 가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 (주)문경사랑 | | ◆ 찻사발의 어제와 오늘
문경도자기는 분원에서 만들어내는 관요(官窯)처럼 예술성과 작품성이 그다지 우수한 도자기는 아니었다.
관요는 왕실용 도자기를 생산하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광주 등에 분포돼 있었다.
문경시가 발행한 문경의 도요지 조사 문헌에 따르면 문경도자기가 꽃을 피운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이른바 민요(民窯)가 활성화된 조선후기다.
1886년 경기도 광주 분원 관요가 문을 닫은 후 서민들이 사용하던 도자기를 빚어온 문경에서 생활도자기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공급되면서부터일 것이다.
문경도자기는 서민들이 즐겨 사용하는 사기그릇이 대부분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흔히 막사발이라 불리는 사발을 비롯해 소박한 대접과 주병 등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문경도자기는 도공과 보부상에 의해 인근 지역뿐만 아니라 1900년 초에는 대도시에까지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1950년대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사람들은 플라스틱 등 서구식 그릇을 찾기 시작했다.
문경도자기 제작자들은 생계조차 꾸리기 막막한 시절을 겪었다.
흙과 불의 조화에 혼을 사르며 장인정신을 고집한 문경전통도예인들의 집념으로 이 시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차 문화가 보편화된 일본인들이 동경하고 있던 찻사발을 문경의 도예인들이 재현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들에 의해 기술이 전수되면서 일본인들은 찻사발(막사발)을 다완으로 총칭하며 귀한 명기로 대접했다.
더구나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이도다완이 바로 조선의 막사발이었다.
1980년대 들어 우리나라도 차 문화가 정착되고,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경의 찻사발은 어느덧 세계적인 명품 반열에 올랐다.
◆명장의 대를 잇는 문경 찻사발
문경의 도예장인들은 전통을 이어가는 데 충실하다.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며 이어온 세월은 중요무형문화재 명장을 낳았다.
또 그들에 의해서 전통 도예의 맥은 대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 도예 명장 9명 가운데 문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예명장은 2명이고, 1명은 문경출신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전통도자기공예부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김정옥 사기장과 천한봉 도예명장이 문경에서 활동하고 있다.
백산 김정옥 사기장은 1991년 정호다완을 재현해 도예부문 초대 명장이 된 이후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으로 지정됐다.
도천 천한봉 명장은 도자기로 일본에 한류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1995년 대한민국 도예명장으로 선정됐고, 2006년 경북 무형문화재 사기장으로 지정됐다.
이학천 명장도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문경에서 활동한 문경출신이다.
또 김억주 문경전통찻사발축제 추진위원장을 비롯한 40여명의 도예인들이 문경 곳곳에 자리를 잡고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7대조부터 200여년에 걸쳐 사기장의 가계를 이어온 백산 김정옥 사기장의 도예기술은 그의 아들이자 전수자인 경식씨가 8대를 잇고 있으며 손자 지훈군도 조선백자 가문의 맥을 잇기 위해 열심히 숙련하고 있다.
도천 천한봉 명장은 그의 딸 경희씨가 91년부터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고, 월파 이정환 경북도 도예 부문 최고장인은 아들 봉규씨가, 관욱요 김종욱씨는 아들 수태씨가 대를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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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찻사발은 차를 담는 그릇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축제장을 찾아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 ⓒ (주)문경사랑 | | ◆대한민국 대표 축제
문경시는 1998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축제가 없었다.
하지만 1999년 지역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가진 찻사발로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문경전통찻사발축제를 시작했다.
2회까지만 해도 예산 2천만원을 들여 새재박물관에서 개최할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축제였다.
공무원들이 부족한 예산 때문에 보안경비업체를 대신해 밤을 새가며 일할 정도였다.
특별한 체험거리도 없었다.
문경시는 지역축제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찻사발축제를 경쟁력 있는 축제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축제장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전시·체험을 늘렸다.
2001년 경북도 우수축제로 선정된 후 4회째인 2002년에는 장소를 도자기전시관으로 바꿨다.
다례시연에서부터 외국 도예인 작품전시, 연예인부스, 괭물체험 등 볼거리와 체험거리도 다양하게 늘렸다.
홍보도 빼놓지 않았다.
축제를 앞두고는 서울 인사동을 찾아 도예명장의 도자기제작 시연, 도자기빚기체험 등 홍보이벤트도 열었다.
이렇게 하자 축제 효과에 속도가 더욱 붙었다.
2001~2004년 해마다 경북도 우수축제로 선정된 데 이어 2006년부터 2년간 유망축제를 거쳐 2008년부터 우수축제, 2012년부터 5년 연속 최우수축제, 이번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표축제 지위에 올랐다.
◆축제의 진화
문경전통찻사발축제는 첫해인 1999년부터 3회째인 2001년까지 문경새재박물관에서 열렸다.
이후 4회 째인 2002년부터 10회째인 2008년까지는 문경도자기전시관, 2009년부터 지금까지 열리고 있는 문경새재오픈세트장에서 해마다 펼쳐지고 있다.
축제 주최는 첫해 문경문화원이 주관한 이후 2회부터 16회까지 축제 추진위에서 맡았으며, 2015년 17회째부터 문경축제관광조직위원회 축제추진위가 축제를 이끌고 있다.
주제어도 축제만큼 변화를 시도했다.
1회와 2회는 찻사발축제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열렸고, 3회부터 5회까지는 인간, 흙, 불의 향연이라는 주제로 변화를 시도했다.
또 6회는 전통과 자연의 좋은 만남, 7회는 전통도자기와 웰빙의 만남, 8회 혼을 굽는 장인과의 만남, 9회 다시 피는 천년의 불꽃, 10회 어기여차 디여차, 11회 문향만리 다향만리라는 주제어로 진화를 거듭했다.
이후 12회 천년의 숨결 차의 향연, 13회 찻사발의 담긴 천년사랑, 14회 흙, 불, 바람의 어울림, 15회 찻사발에 담긴 전통 그 깊은 울림, 16회 발물레차는 사기장이야기, 17회 망댕이가마 불지피는 사기장의 하루, 18회 사기장이 들려주는 찻사발이야기로 축제는 이어져왔다.
이밖에도 문경전통찻사발축제는 2012년부터 축제를 유료화해 우리나라의 대표적 축제 유료화 성공사례로도 알려져 있다.
◆인터뷰 - 찻사발축제 초대 추진위원장 도천 천한봉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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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주)문경사랑 | | “팔십 평생 문경에서 찻사발을 만들어 오면서 가장 보람있게 느낀 것은 바로 오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표축제로 선정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닙니까.”
초대 문경전통찻사발축제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도천 천한봉 명장은 문경찻사발축제가 대표축제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도예 인생 70년. 생계를 위해 배운 일이였지만 세월의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도예 명장이 된 그다.
천 명장은 찻사발축제가 대표축제로 선정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서로 협력하며 화합의 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깊다고 이야기한다.
“지금도 기억이 나요. 1999년 10월 처음 축제가 출범할 당시 열두세 명 정도의 도예가가 각자 주머니 돈을 털어 문경새재박물관 담장안에 조그마한 포장을 치고 시작했어요. 그것이 축제의 발판이 되어 18년이 지났네요.”
그는 문경찻사발축제가 대표 축제에 선정된 것은 정직함이라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반사람들에게 문경도자기가 알려진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문경도자기가 국내외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전통방식대로 만들어진 찻사발 때문일거라고 믿어요.”
또 문경시의 적극적인 홍보와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다고 전했다.
“도자기 박물관을 설립하고 홍보판매장을 개장하면서 비싸다고 생각했던 작품들을 사람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됐죠. 또 문경도자기는 전통방식대로 만드는 찻사발이라는 홍보를 통하여 신뢰를 쌓이게 됐구요.”
한평생을 물레와 씨름해온 노(老)도공은 잠시 말문을 멈추다 이어 나간다.
그는 “문경전통찻사발축제는 문경지역의 도예가들과 시민이 하나가 되어 겸손한 마음과 이타심으로 지역축제를 전 세계에 알리고 축제를 글로벌축제로 거듭 나게 하는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숙제를 남겼다.
또 “앞으로 문경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도예가들은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던 선배 도예가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잘해 왔지만 여기에서 안주하지 말고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더욱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의 말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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