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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死者)의 서(書)

2016년 12월 01일(목) 17:38 [주간문경]

 

 

↑↑ 김 안 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경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

ⓒ (주)문경사랑

 

고대 이집트에는 죽은 자의 내세의 명복을 비는 글을 시신과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글을 ‘사자의 서(Book of Death)’라고 한다. 이 글은 죽은 자를 위한 산 자의 글로서, 기도문․찬미가․서약문․신조(信條)․주문(呪文) 등과 같은 성스러운 글, 곧 성서(聖書)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저승이 있고 또 거기서 심판이 이루어진다면 이 ‘사자의 서’는 재판의 참고 자료가 되므로 죽은 자에게 다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저승이 없다고 하면 이 글들은 산자의 소망일 뿐 헛된 노력에 불과하게 된다. 즉, 사자에 대한 산자의 정성어린 기도문일 뿐이다.

고대에 있어 이집트를 위시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저승이 있다고 믿었고, 죽은 자들은 언젠가 다시 살아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방부제 등의 여러 가지 약을 개발하여 죽은 자의 몸을 썩지 않도록 보전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미라(mirra, 木乃伊) 또는 머미(mummy)이다.

이집트의 왕실묘지를 위시한 우리나라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오래 된 무덤 속에서 미라나 썩지 않은 오랜 시체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영혼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시체는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땅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 지상에서 태어난 몸은 지상에서 살다가 지상에서 끝나고 말며, 결코 다른 곳으로 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죽음에 임할 때 두 가지의 글을 남긴다. 하나는 죽는 자가 산자들에게 주는 글, 곧 유언(遺言)이고, 다른 하나는 산자가 죽은 자에게 주는 글, 곧 ‘사자의 서’와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후손들에게 줄 유산의 배분이나 지켜야 할 인륜 도덕의 길을 유서로 남겨 주고, 또한 생년월일과 사망일자 및 세계(世系)와 성명을 적어 죽은 자의 관 속에 넣어 저승사자에게 죽은 자가 누구인지 알리기도 하였다.

산자와 죽은 자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서로가 해야 할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유서는 산자를 위한 죽은 자의 글이므로 산자의 입장에서는 극히 유익하고 매우 값진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사자의 서’는 죽은 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기는 하나 죽은 자가 그 사실을 모르거나 아무런 효험도 발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자의 서’가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이승과 저승간의 문자 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저승에 있는 주요 직책의 신들, 즉 사자, 천사, 선녀, 염라대왕, 옥황상제 등이 이승의 여러 나라에서 쓰는 모든 문자를 다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자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은 휴지에 불과할 뿐이다.

산 자들의 정성과 소망을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먼 훗날 그 기록물이 썩지 않고 인간들에게 발견되어지면 그것을 묻었을 시대의 제도와 관습, 신앙과 사상, 언어와 문자, 문명과 문화 등을 유추하는 자료로서 유용하게 쓰여 진다는 효과는 있다.

나는 좀 특이하게 ‘사자의 서’가 아니라 ‘산자의 서’를 땅 속에 매장한 적이 있었다. 70년간의 삶의 기록을 정리하여 발간한 《인생백서(人生白書)》를 위시하여 그동안 집필한 몇 권의 저서들을 나무통에 넣어 이를 고향의 부모님 묘소 바로 앞에 묻으면서 생애 업적을 보고 드렸던 것이다.

세월이 가면 모두 썩어 흙으로 돌아가고 말겠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에게나마 조금의 기쁨과 영광을 드리고 싶었던 정성의 뜻이었다. 나는 이승을 하직할 때 그 시점까지의 나의 기록물과 저서들을 안고 관에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있으며, 또 그렇게 해 주기를 자손들에게 당부할 생각이다. 많은 ‘사자의 서’가 새로이 매장되고, 오래된 것은 많이 발굴되어 연구에 유효하게 이용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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