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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암서원

2013년 07월 19일(금) 12:49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대구지검 상주지청

ⓒ (주)문경사랑

 

도산서원 입구에 큰 왕버들 나무가 두 그루 서 있다. 수령이 400여년은 족히 될 듯하다. 서원에 대한 명성을 나무도 알고 있었을까. 누가 되지 않으려는 듯 오랜 세월을 버티어온 품새가 대단하다. 이처럼, 명소(名所)에는 그를 빛나게 하는 상징들이 있다. 서원의 강학 장소인 전교당의 현판도 그렇다. 현판의 ‘도산서원(陶山書院)’, 네 글자는 한석봉의 글씨이다.

어느 날, 선조임금이 그를 불렀다. 그리고 글씨를 쓰게 하였다. 한 자씩 불렀는데, 마지막 글자가 ‘도(陶)’ 였다고 한다. 그제서야, 자신이 ‘도산서원’의 현판 글씨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평정심을 잃어 마지막 획, 삐침에서 떨었다고 한다. 당대의 한석봉이 그런 실수를 했을까마는, 이는 도산서원의 가치를 짐작케 하는 또 하나의 상징이다.

그 상징들로 우리들은 서원의 가치를 확인하고 감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상징은 무엇이 있을까. 서원의 이름을 살펴보자. 왜 도산(陶山)인가. 도산은 서당이 위치한 산의 이름이다. 도(陶)는 질그릇을 뜻하는 것으로 학문을 궁구하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굳이 서원의 이름을 풀이하면, ‘자연에서 학문에 힘쓰다.’ 라는 정도가 될 듯하다.

옛 사람들이 이름을 짓는 일은 단순하면서도, 이렇듯 깊이가 적지 않다.

병산서원의 상징은 만대루(晩對樓)이다. 이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라는 시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옛 건축물에서 진입 공간의 아래 위에 세워지는 건물의 정면 칸 수는 홀수로 배열한다. 좌우 건축물은 짝수 칸이다. 그래서 만대루는 정면 일곱 칸, 측면이 두 칸이다.

입교당에서 만대루를 바라보면 앞산의 풍광이 일곱 개로 나누어진 병풍과 같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 만대루를 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으로 한국건축사의 백미이다.’라고 절찬하였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서원의 이름에 주목하게 된다. 왜 병산(屛山)일까. 마찬가지로, 서원 앞의 산이 병산이기 때문이다.

도산서원에는 없는 누각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이 산 때문이라고 한다. 만대루는 서원과 산의 사이에서 병풍과 같은 가리막 역할을 한다. 단순한 막이 아니라, 서원과 산의 거리를 더 넓고 길게 트여주는 확장공간이다. 또한 풍수의 부족함을 보충(補充)하는 비보(裨補)이기도 하다.

우리 지역에도 서원이 있다. 산북면 서중마을에 있는 근암서원이다. 조선시대 우리 지역의 유학자 부훤당 김해가 지은 ‘영빈서당 이설기’에 그 내력이 대략 있다. 잠시, 들여다보자.

“중종39년(1544년) 상주목사 신잠이 각 현에 서당을 창건하고, 이 서당은 그 중의 하나이다. 산양 현사(縣舍)의 건너편 웅암의 산기슭 아래 바로 영원사 옛터에 자리를 잡았었다. 그러므로 석탑 3좌가 아직도 높이 우뚝 서 있다. 네 칸의 집을 세워 당(堂, 마루)과 실(室)로 나누고 그 이름을 ‘죽림’이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웅창마을 도천사지 3층석탑이 있던 그 자리에 죽림서당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7세기 초에 그 장소가 협소하여 지금의 근암서원 자리로 옮겨진다. 곧 이 죽림서당이 근암서원의 시원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서원의 이름이다. 근암은 산양의 옛 이름으로 근품이라고도 했다.

또한 ‘근암(近嵒)’은 산양면 현리마을의 산 이름, ‘근품산(近品山)’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품(品)’과 ‘산(山)’의 결합어가 바위 ‘암(嵒)’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산과 병산이 서원의 이름이 되었듯이 근암서원도 산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근암서원’을 풀이하면, ‘근품산(近品山)서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옛 사람들은 무슨 연유에서 주변 산을 서당과 서원의 이름으로 사용했을까.

17세기 우리 지역의 유학자들은 퇴계를 유학의 종장으로서 그의 사상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퇴계가 지향하는 학문의 이념은 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퇴계는 학문의 목적을 입신양명이 아니라 수기(修己), 스스로를 닦는 수양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벼슬을 하지 않고 지역에서 학문에 힘쓰는 선비를 처사(處士)라고 하여 높였다. 그리고 학문에 힘쓰되, 자연과 즐겨 벗하며 심신을 수양할 것을 강조했다.

소나무와 대나무, 국화와 매화 등을 칠우(七友)라고 하였고, 농암 이현보와 함께 어부사를 부르며 강에 배를 띄워 풍류를 즐겼다. 자신이 머무는 도산서당의 마루를 암서헌(巖棲軒)이라고 불러, 늘 자연과 가까이 하는 마음을 지녔다.

이렇듯, 학문과 심신수양의 근본 처(處)를 자연으로 삼은 그의 이념을 쫒아, 주변 산의 이름으로 서원의 이름을 짓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럼, 우리가 근암서원에서 찾을 수 있는 다른 상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서원의 누문(樓門)인 지원루(知遠樓)를 눈여겨보자. 여기에 오르면 산북면의 들과 금천 그리고 서원의 이름이 된 근품산이 보인다. 마치 병산서원의 만대루에서 병산을 보듯이 말이다.

옛 선비들은 이 누대에 앉아 무엇을 떠올렸을까. 지원(知遠)이라는 누문의 뜻을 새겨보았던 것은 아닐까. 이는 회남자(淮南子)의 설산훈(說山訓)에 나오는 ‘지원불지근’(知遠不知近)에서 가져온 글자인 듯하다. 즉 ‘남의 일은 잘 보이나 자기 일은 잘 안 보인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근품산을 바라보며, 남의 일을 보듯이 스스로의 잘못을 살펴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 듯하다. 그것이 퇴계가 학문의 목적으로 삼은 수기(修己)이며, 벼슬하지 않고 지역에서 학문하는 처사(處士)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살펴보면, 어느 곳에도 장소를 상징하는 시그널은 분명 있다.
중요한 것은 그를 밝혀 찾아 읽어 보려는 마음의 눈이다. 우리 지역이 지닌 문화유산과 뛰어난 풍광은 적지 않다. 다만, 이를 폄하하지 않고 긍정하며 그곳에서 인문학적 의미를 찾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어쩌면, 이러한 소소한 일들이 그 옛적에 ‘지원부지근(知遠不知近)’하면서, 스스로를 성찰하며 학문에 힘썼던 선조들에 대한 작은 보답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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