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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고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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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6월 28일(금) 16:51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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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허운 이창녕
가은읍 출생
전 점촌초등학교장 | ⓒ (주)문경사랑 | | 보리밭으로 가면서 뒷산을 올려다보니 동네 아이들이 그네 나무 밑에서 엿장수 아저씨를 둘러싸고 처녀들은 그네를 타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엿장수 아저씨의 쨍그랑 그리는 가위 소리를 들으니 화는 더 치밀고 따라오는 개에게 화풀이를 하고 말았습니다. 지게를 밭둑에 비스듬히 걸쳐놓고 보리 밭 고랑에 들어서서 보리를 베는데 일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맘은 그네 나무 아래 엿장수에게 가있는데 낫질이 지대로 될 일이 없지요. 그렇지만 뾰족한 수는 없고 보리 한 짐을 베어서 집 마당에 져다놓고, 다시 밭으로 가는데 마침 들에 가셨다 돌아오시는 할머니와 만났습니다.
저는 다짜고짜로 할머니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말씀 한 마디에 기가 팍 죽고 말았습니다.
“공부나 좀 잘해서 통신표나 잘 받아왔으면, 단오 날에 애비가 보리 베라고 했겠나?”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체 밭으로 갔습니다. 풀 죽은 손자가 불쌍했던지 할머니는 뒤에서 좀 있다가 보자 시는 말씀을 하시고는 집으로 가셨습니다.
밭골에 엎드려 보리를 베면서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래 이제부터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해서 통신표에 수우수우 만 있게 만들어 보자.’
어금니를 꽉 깨물고 12살 소년이 처음으로 공부와의 전쟁을 선포한 날이었습니다.
사래긴 밭 세 골을 다 베고 나니 어느새 해는 중천이고 온 몸에 땀은 흐르는데 배는 고프고 저 너무 엿장수는 가지도 안하고 연신 쨍그랑 그래쌓고 참말로 죽겠습디다.
밭골에 앉아서 그네 타는 아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아버지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리 다 벴나?” 나는 기겁을 하고 일어서니 아버지께서는 지게를 지고 밭가에 와 계셨습니다. “이놈의 자석이 여태 요것밖에 못 했나?”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는데 얼른 보리를 지게에 지고 집으로 가자시며 빨리빨리 안 한다고 호령을 하십니다. 나는 덮어놓고 혼 날줄만 알았는데 아버지의 의외의 행동에 어리둥절하였습니다.
보리 한 짐을 마당에 내려놓고 식구들이 마루에 둘러 앉아 멀건 국시 물에 찬 밥 한 덩어리씩 말아먹고 있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시던 아버지께서 나를 바라보시며 오늘 단오 날에 보리를 베보니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시는데 겁이 나서 대답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한 참 동안 바라보시다가 동생들한테 본이 되도록 하라시며 돈 15원을 주시는데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아버지는 들로 가시고 나는 돈15원을 주머니에 넣고 뒷산 그네 터로 올라 가니 기분도 좋고 기운이 펄펄 났습니다.
얼른 엿장수한테로 가서 나는 오화당을 동생들한테는 일화 당을 사서 입에 물고 나니 세상천지가 온통 내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오화당 일화 당이 그립기만 합니다. 그런데 오화당을 입에 물자말자 동무 두 녀석이 연신 입맛을 다시며 내 입만 바라보며 “야! 한 입만 한 입만” 하면서 졸졸 따라 다니는데 할 수 없이 돌아가면서 사탕을 한 번씩만 빨도록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동생들까지 끼어들어서 사탕이 한입씩 돌고 도니 어느새 일화 당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아이들한테 사탕하나주고 한입씩 돌아가면서 빨아먹으라고 하면 반응이 어떨까요? 아마도 더럽다고 난리가 나겠지요?
그 때는 더러운 줄도 몰랐고 단 맛에 젖어 동무와 당연히 나누어 먹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골목에서 엿장수 소리가 나면 아이들은 집안에 있는 못 쓰는 물건을 건네주고 엿으로 받아먹는 재미가 참 좋았습니다. 어떤 아이는 자루 부러진 도끼를 엿으로 바꿔 먹었다가 혼이 나기도 하고 그 시절 엿장수에 얽힌 이야기는 참 많았습니다.
보리타작을 하고 나면 우리들은 겉보리 얼마를 가지고 원두막으로 가서 참외와 바꿔먹기도 했습니다. 긴 춘궁기가 보리타작 소리에 사라지고 나면 농촌은 모내기가 시작되고, 학교에서는 일손을 돕는다는 취지로 며칠씩 가정실습을 했습니다. 쌀이 나올 때까지 보리밥으로 살다보니 방귀를 많이 뀌었죠. 아마 지금이 방귀 질 나는 계절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하하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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