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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고개(상)

2013년 06월 18일(화) 13:22 [주간문경]

 

 

↑↑ 허운 이창녕
가은읍 출생
전 점촌초등학교장

ⓒ (주)문경사랑

 

모처럼 집사람과 산나물을 뜯으러 갔습니다. 집사람이 아는 산나물은 취나물과 다래 순이 전부입니다. 저는 산촌에서 컸는지라 산나물 이름까지 다 알았지만 이제는 몇 가지 밖에 기억을 못합니다. 집사람이 얼른 좀 와보라는 신호가 와서 가보니 수리취를 꺾어들고 이것도 취나물 아니냐고 묻습니다. 저는 수리취를 보면 옛날 생각이 납니다.

50년대 60년대 백성들의 삶은 정말로 고단했고 참혹하기 까지 했습니다. 돌림병이 한 번 돌고 지나가면 마을에 어린 아이들 몇 명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뒷산에는 군데군데 아이들 무덤(애장)이 많았습니다. 위생상태가 불량하기 짝이 없었고 먹을 것이 귀하니 영양 상태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야 말로 명이 길면 살았고 명 짧은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시골에는 의료시설은 전무하였고 복용할 약 마저도 없었습니다. 치료 수단이란 것이 겨우 민간요법이나 굿을 하고 푸닥거리를 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형편이 그러하니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을 산과 들에 의지하였고 몸을 다치거나 병이 나면 필요한 약도 자연 속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처마 끝에는 약초로 쓰이는 풀과 꽃, 뿌리, 심지어는 아편까지 걸어놓고 있었습니다.

먹는 음식이 모두가 거친 것 일색이니 배탈도 자주 났고 회충이 많은 아이들은 얼굴색이 노랗고 아랫배가 톡 튀어나왔습니다.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회충약은 밥을 굶고 먹는데, 먹고 난 뒤에 회충이 몇 마리가 나왔는지 세워보고 학교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던 웃지 못 할 일도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겨울을 막 벗어나서 보리가 익을 때까지의 시기가 가장 고단한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보리 고개라 불렀는데, 이 기간을 견뎌내기 위해서 사람들은 자연에 의지할 뿐이었습니다. 모든 음식물이 다 거칠고 험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수리취와 송구였습니다. 수리취 나물은 앞면은 녹색이지만 뒷면은 하얗습니다. 나물로 먹기는 맛도 없고 팍팍해서 떡을 해먹었는데, 먹고 나면 한 참 동안은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배가 든든하여 시장기를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송구(소나무 속껍질)는 소나무 겉껍질을 낫으로 벗겨내고 속껍질을 벗겨서 잿물에 담가 송진을 울거 내어 바싹 말린 뒤에 디딜방아로 찧어 가루를 내어 나물국에 훌훌 뿌려서 먹거나 송구 떡을 해먹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뒷간에 가 앉아 있으면 항문이 째지는 고통과 그래도 변이 나오지 않아 결국 손으로 똘똘 뭉친 고채덩어리 변을 끄집어내는 기막힌 일들이 매일 같이 있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나 아이들이 들으면 믿지 못할 일이지만 지금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 시절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지금이야 너무나 좋은 환경에 기름진 음식이 오히려 병을 부르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도깨비 같은 세월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벽촌 마을까지 가게가 있어서 돈만 있으면 맛있는 과자를 사먹을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마을마다 엿판을 지고 다니는 엿장수 아저씨가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적어내는 아이들 중에 깨 많은 아이들이 엿장수를 적어내어 선생님께 야단을 맞는 일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단오 날이 밝았습니다. 어제 저녁까지는 동네 청년들이 그네 줄을 디리느라 수고를 하였고, 처녀들은 모둠 떡을 해서 수고하는 청년들에게 대접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단오 날이 되면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날은 용돈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엿장수 아저씨가 가져오는 엿과 사탕이 눈에 선하였지요. 사탕 하나에 일원(일화당)하는 사탕, 탁구공보다 조금 작은 오화당(5원)한 알을 입안에 넣고 빨면 입안에서 울어나는 달콤한 맛은 환상적이었으니 단오 날 용돈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엿이나 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그네를 타면 그 기분은 안 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날은 아버지께서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으신지 저를 부르시더니만 하시는 말씀이 “오늘 중으로 모티 밭에 보리를 다 베어라 알았나?”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란 말입니까. 지금 같으면 왜? 그르시냐고 묻기라도 할 텐데 그 당시는 아버지 말씀이 곳 법이라 그럴 수도 없고 지게를 지고 낫을 들고 보리밭으로 가는데 눈물이 어찌나 나는지……. 다음호에 계속. 고맙습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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