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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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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7월 27일(금) 17:26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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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점촌1동 산악회 | ⓒ (주)문경사랑 | | 여름이 시작되는 어느 날 가족과 함께 통영으로 여행을 갔다. 통영은 내 푸른 시절, 푸른 군복과 함께 했던 곳이다.
기억을 더듬어 지금의 모습에서 옛 거리들을 떠올려보았지만 스무 해가 넘는 세월의 간격은 녹녹치 않았다. 애써 기억을 떠올리기에 지쳐 있을 무렵, 어느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박경리 기념관’을 알리는 표지판이었다.
문득, 이곳에 근현대의 이름있는 예술가들이 많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남망산 공원에 청마 유치환의 ‘깃발’이라는 시비가 남쪽을 바라보고 있고,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을 기념하는 ‘통영국제음악제’가 매년 열리는 곳도 여기이다.
이곳 사람들은 나고 자라면서 그 이름들과 늘 함께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그들을 닮은, 그들을 뛰어 넘는 제2, 제3의 박경리와 윤이상, 그리고 유치환이 적지 않다. 갑자기 통영이 부러워지려고 했다.
문득, 내 고향 문경이 떠올랐다. 근대화의 힘찬 격량을 헤쳐 나갈 때, 문경 사람들이 의지한 것은 검은 석탄과 그와 함께 한 질곡(桎梏)같은 삶이었다. 통영의 사람들이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유치환의 깃발을 연모할 때도 기침소리를 내며 검은 광물을 채광하였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때 누군가 한 말이 쉽게 잊혀 지지 않았다.
“우리 문경은 인물이 없어. 양반, 양반하는데 문경에 양반이 어디 있노.”
조선시대 오백년을 거쳐 오면서 근현대에 이르기 까지 우리 문경 사람들이 흠모하고 자랑스러워 할 훌륭한 인물이 이 고장에 없다는 선언은 사뭇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이는 짧은 지식에 의한 무지의 소견일 수도 있다. 혹은 인근의 상주나 예천, 안동 등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열패감이거나 피해의식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문경에 발을 디뎌 살아왔고 살아갈 나로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었다.
며칠 전, 동로큰마을에서 동네터 농원을 운영하는 김규천 형과 여럿이서 저녁을 함께 했다. 형은 문경문화원의 향토사연구위원이기도 하다. 형이 말했다.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트랜드는 두가지야. 하나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길’이고 또 하나는 ‘고집’이라. 그 고집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소신을 말하는데 홍귀달(洪貴達)이라는 분이 그 대표지.”
그때부터 나는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홍귀달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문경시 영순면의 율곡마을에서 태어나 호조판서 등을 하였고 후에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본관은 부림이며 시호는 문광공이다.
율곡마을 도로변 야산에 도유형문화재인 신도비(神道碑)와 묘가 있다. 그가 연산군의 폭정에 목숨을 걸고 올린 상소는 상소문의 백미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우복 정경세는 그의 문집에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형틀을 마치 편안한 수레처럼 생각하는 기상이 우리 눈앞에 보인다'라고 찬(讚)하였다. 그후 왕이 자신의 손녀를 세자빈으로 책봉하려고 하자 이를 끝까지 거부하여 유배를 가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의(義)가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의(義)를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여긴 고집이었다.
하지만, 그의 절개와 소신은 스스로에서 머물지 않고 아들 언충(彦忠)이 이었다. 호는 우암이며 문장이 뛰어났고 이조좌랑을 지냈다. 어쩌면 그는 아버지를 넘어서는 또 다른 고집의 전범(典範)을 보여주었다. 연산군 10년 갑자사화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유배길에 오른 그는, 유곡역에서 묘비에 새길 글을 짓고 문경새재를 향했다.
새재에서 쉬던 중 중종반정의 소식을 들었다. 그때 그는 엎드려 몹시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것은 새로운 임금 중종에게 감사하는 울음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고 한 연산군을 위한 슬픈 울음이었다는 것이다. 이규태는 그의 칼럼에서 그의 울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기 자신의 인간적, 육체적인 것은 극소화하고, 의(義)나 절(節)이나 정신적 가치를 극대화한 데서 생겨난 위대한 정신의 개선문을 역사에 세워놓은 것이다.’
영순면 의곡마을에 그를 추모하는 청산재(靑山齋)가 있다. 그 앞에 섰다. 오래되어 고졸(古拙)하나, 그의 성품에 맞는 듯 단촐하다. 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청산(靑山)을 뒤로하고 낙동강을 굽어보는 자리이다.
잠시 우리 문경을 되돌아본다. 스스로의 타고난 재능으로 예술의 꽃을 피워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이도 훌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를 넘어 자신이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재능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위대함이다. 우리 지역에 그러한 이들이 적지 않다는 자긍이 크다. 나는 통영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감히 선언하고자 한다. ‘문경에는 참 인물이 많다. 양반 이상의 양반들이 있다.’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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