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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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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7월 17일(화) 13:53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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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허운 이창녕
가은읍 출생
전 점촌초등학교장 | ⓒ (주)문경사랑 | | 오늘은 자욱이 내려앉은 운무 때문에 얕은 햇살이 고즈넉한 오후 한 때를 졸음 오게 하고 있습니다. 유난히도 햇살이 따사롭던 유년 시절 어느 해, 보릿고개에 모두가 허덕일 때 한 눈에 봐도 부황이 난 걸인이 자식 둘을 대리고 우리 집을 찾아들었습니다.
모두가 가난한 살림이라 입 하나가 있고 없는 게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산골 처녀가 시집 갈 때까지 쌀 한 말을 못 먹고 갔을 그런 시절이었고, 입 하나를 들기 위해서 계집애들은 남의 집 식모로 수양딸로 떠맡기는 아주 지독히도 가난한 시절이었습니다.
마당에 서있는 걸인을 할머니께서 멍석을 펴주며 고단한데 서있지 말고 앉으라고 하니 걸인은 먹을 것을 좀 달라는 시늉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굶었으면 말도 못 하누”
할머니는 혀를 차시며 정지 간으로 들어 가셔서 점심 때 먹던 감자 몇 개와 남은 국수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그 모습을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부모는 어린 자식 입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서로 먹으려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참 많이 놀란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내남없이 배고프든 시절이라 얻어먹으려고 다니는 걸인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사람들을 보고 “얻어박시”라고 놀리기도 하였고 “거지”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였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답답한 일을 당했을 때나 별거 아닌 일을 가지고도 “환장 하겠네”란 말을 쓰곤 하는데 “환장”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로는 환장(換腸)은 마음이나 행동 따위가 비정상적인 상태로 달라짐. 예를 들면 전쟁터에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그 어미는 환장을 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등으로 쓰이는 단어인데, 함부로 써서는 안 될 삼가야할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할머니께서는 걸인들이 돌아가자 환장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돌이켜 보면 정말로 환장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요새 아이들은 보릿고개란 말을 전혀 모를 것입니다. 3월부터 6월까지가 춘궁기로 일 년 중 가장 배고픈 시절로 보리가 익어서 먹을 수 있을 때까지의 시절을 보릿고개라 하는데, 이제는 그 보리가 웰빙이란 이름의 건강식품으로 둔갑을 하여 보리밥집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그 시절의 구황식품이 화려하게 부활하여 비싼 값으로 팔리는 것을 보면 음식도 유행이 있는지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집은 그래도 좀 사는 집이었고, 대게는 고구마, 감자, 조, 국시, 등이 주식인 집이 많았습니다. 그나마도 춘궁기가 되면 바닥이 나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연에 의지해 살아갑니다.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생활이 보릿고개 내내 이어졌습니다. 그 때는 부황(浮黃)이란 병이 있었는데 참으로 비참한 병이었습니다. 오래 굶주려서 살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렇게 되는 병인데 그 병에 걸리면 약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그 병을 막는데 쑥이 최고의 명약(名藥)이었습니다. 아무리 오래 굶어도 쑥만 먹으면 부황병은 예방이 되었으니까요.
우리 속담에 “방구 질 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리밥을 먹고 나면 왜 그리도 방구가 많이 나오는지 아이들은 누구 방구 소리가 더 큰지 시합도 하였다니까요. 하하하. 가끔씩 산에 가면 새순이 길게 나있는 소나무를 보면 지내보이지를 않습니다.
소나무 껍질을 송구라고 했는데 그 껍질을 벗겨서 물에 한 이틀 담가 놓으면 송진 성분하고 붉은 물이 빠집니다. 그리고 바싹 말려서 디딜방아에 찧어서 가루를 만들고 그 가루를 다시 채로 쳐서 이물질을 걸러낸 다음에 밀가루나 콩가루와 섞어서 수제비나 나물국에 훌훌 풀어서 먹었습니다. 밀가루 콩가루가 없는 집에서는 그냥 만들어 먹기도 하였는데 소화가 잘 되지를 않아서 다른 음식을 먹지 않아도 속이 든든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화장실이었습니다. 이 음식을 먹은 모든 식구들은 하나같이 변비로 고생을 했는데, 그 때 만들어진 속담이 하나 있는데 알란가 모르겠습니다. “항문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 하였다.”란 말이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먹을 것이 없었으면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살았을까요?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요새 젊은이들로서는 상상도 이해도 할 수 없는 일을. 70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그렇게 살면서 오늘의 세상을 만드는데 초석을 놓았던 것입니다.
죽지 않고 살기위한 몸부림치며 환장했던 그 시절, 생각하기조차 싫은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내 삶의 인생도 그 만큼 깊어졌다는 의미이겠지요.
오늘은 옛날이야기를 좀 해보았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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