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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밥통

2012년 07월 06일(금) 12:24 [주간문경]

 

 

↑↑ 허운 이창녕
가은읍 출생
전 점촌초등학교장

ⓒ (주)문경사랑

 

우리들 집 창고나 으슥한 장소에는 어김없이 묵은 살림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체 하염없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집도 창고 정리를 하다 보니 집사람이 이웃의 아낙네들과 전기밥통 계를 하여 구입한 35년이 된 전기밥통이 묵은 먼지를 이불삼아 덮고 한 쪽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사용할 수 있는 데도 압력 밥솥이라는 새로운 물건에 밀려나서 쓸모없는 처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필요할 때가 좋지 사람의 관심사에서 밀려나면 서럽기가 그지없습니다.

물건도 이러한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쓸모가 없어진다면 얼마나 서러울까요? 창고에서 짐정리를 하다가 집사람을 불러다가 전기밥통을 이제는 고물전에 가져다주라고 하니, 우리 집 역사라며 가만히 두랍니다. 먼지를 털고 깨끗이 닦은 다음에 전기 프라그를 꽂으니 전기가 들어온다는 표시로 빨간색 불이 켜져야 하는데 소식은 없고 밥을 퍼 넣기 전에 미리 보온을 눌러야하는, 그야말로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밥통입니다.

몇 해 전, 집사람이 수리하는 곳을 묻고 물어서 어렵게 찾아갔는데 주인아저씨께서는
"이것 그만 버리세요! 요즘 이런 전기밥통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고쳐봐야 쓰지도 않을 것을, 괜히 배보다 배꼽만 더 커요!"

흰색바탕에 가냘픈 연분홍코스모스 무늬가 아이보리로 퇴색해버렸지만 그래도 사용 후 깨끗이 닦아 잘 보관해 놓았기 때문에 때나 먼지가 조금도 끼지 않아 겉보기에는 새 물건 같답니다. 일기장을 보니 1977년 3월 29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토요일 오후에 계를 하여 집사람이 당첨되어 가져온 전기밥통입니다.

우리 집 재산 목록 10번 안에 들 정도로 귀한 물건이라 집사람이 참 많이 아끼든 물건임을 잘 알고 있지만, 시대도 변했고 고장이 나도 고쳐줄 사람도 없으니 그만 치웠으면 좋겠는데 집사람은 아직도 사랑땜을 덜했는지 신주단지 모시듯 큼직한 비닐봉지에 담아서 설강위에 올려놓고는 나가버립니다.

요즘 새댁들도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들을 그렇게 귀한 물건으로 취급을 할까요? 결혼을 하면서 필요한 온갖 물건들을 빠짐없이 다해가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고, 그러니 물건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느낌 또한 절실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살림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풍족하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필요한 물건을 하나 둘씩 모아야 애착이 생기고 살림을 늘려가는 보람도 느낄 수 있습니다.

적금도 타고 계도 하면서 내가 직접 고르고 선택한 물건이라야 살림 늘리는 재미와 맛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편하고 빠르게 모양도 예쁘고 기능도 다양한 각종 전기압력밥솥이 대량생산되어 가정마다 1대씩은 다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한 때는 외제품을 선호 하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국산 제품이 더 좋다며 자연스럽게 국산품 애용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은 식혜를 할 때는 반드시 구형 전기밥통으로 해야만 잘 된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기에, 아예 다른 밥통에서는 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첫 딸과 나이가 똑같다는 이유도 있지만 살림이 구차할 때 장만한 소중한 물건이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딸들이 오면 그만 버리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으면서도 아직까지는 전기밥통에 대한 애정이 변함이 없습니다.

아침이면 출근 준비하느라 바빴던 그 시절에 편리하게 따스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준 전기 밥통은 잊을 수 없는 끈끈한 정이 깊이 배여 있기 때문이랍니다.

겉보기에 비까번쩍한 물건들보다 추억이 담긴 손때 묻은 물건들이 더 소중한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두고 가까이 함께할수록 더 아름다고 향기로운 법이지요.

이사할 때 보면 묵은 살림을 쉽게 버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멀쩡한 물건들이 주인에게 버림을 받은 채 구석으로 밀려난 것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소파나 가구 같은 것들은 정말로 새것 같은 것들이 많은데 필요한 사람들은 가져다가 사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형편들이 좋아서인지 몰라도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새 것을 선호하는 것을 나쁘다고 나무랄 수는 없지만, 오래된 것이 때론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져야만 전통도 생기고 고전적인 문화도 형성 되리라고 생각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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