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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세상읽기(35)-운하(運河)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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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30일(금) 16:43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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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성주
전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 (주)문경사랑 | | 얼마 전 지중해(地中海)와 홍해(紅海)를 잇는 수에즈(Suez)운하가 막혀 선박 운항에 큰 차질을 빚은 적이 있다. 운하(運河)는 선박 운항이나 관개, 급수, 배수 등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물길을 말하는데 우리에게는 익숙하지가 않다. 그나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강조하는 바람에 좀 익숙해지긴 했다.
우리나라 기록에는 충남 태안군의 안면도(安眠島)가 본래 섬이 아니라 안면곶이었는데, 운하를 파서 육지와 분리되면서 지금처럼 섬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 운하 공사는 영남과 호남의 세곡을 실어나르는 조운선(漕運船)이 태안 앞바다에서 자주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고려 때부터 파기 시작해 몇 차례 중단됐다가 조선 인조 때 마무리가 된다.
또 다른 기록은 조선 태종 13년(1413년) 좌의정 하륜(河崙)이 “숭례문 밖에 운하를 파서 배를 통행하게 하소서”라고, 한강변 용산에서 숭례문까지 운하를 건설해 곡식 등 물자를 운반하자고 주청하자, 태종은 “많은 백성이 노역으로 고단하게 되고, 중국과 달리 사석(沙石) 토질이라 뱃길을 만들어도 토사가 금세 쌓여 물이 차지 않기 때문에 이용하기 쉽지 않다”며, 윤허하지 않은 기록 등이 있다.
수(隨)나라, 경항(京杭)대운하 건설
태종도 말했듯이 중국에서는 운하가 그리 낯설지 않다. 지금도 남아있는 ‘대운하’[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가 그것이다. 수도 베이징과 남쪽의 항저우(杭州)를 잇는 운하다. 두 도시의 거리는 1,500㎞ 정도이지만, 이어지는 크고 작은 하천을 연결하느라 운하의 총 길이는 2,700㎞나 되고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다.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국력이 소진돼 멸망한 수(隨)나라 양제가 서기 605년에 공사를 시작해 8년 만에 주요 물길이 연결되고, 원(元)을 거쳐, 명(明) 영락제(1360~1424) 때 완성됐다고 기록된다. 수(581~619) 나라가 고구려 침략에 실패하고 운하 굴착에 백성들을 강제 동원하는 바람에 일찍 망하고, 정작 혜택은 당(唐)나라가 봤다.
대운하가 개통되면서 경제적으로 풍요했던 남쪽이 북쪽과 연결되면서 중국 전체의 유통이 원활해졌다. 자체 생산력으로는 식량을 충당할 수 없었던 장안(長安)이나 베이징(北京)이 수도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대운하를 통한 유통의 원활함에 힘입은 것으로 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옛날, 물길이 고속도로 역할
운하는 중국 뿐만아니라 유럽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경제 발전이 영국, 독일, 네델란드 등으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부피가 큰 원자재나 상품을 대량으로 운반하는 데는 물길과 선박을 이용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산업혁명 와중인 18세기 중엽까지의 육상교통은 아주 열악했다.
바다나 운하 등 물길이 지금의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 철도와 고속도로망이 완비되면서 운하의 효용도 감소했지만, 아직도 운하는 물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에서는 5대호(湖)를 연결하는 운하들이 아직도 중요한 수송로 역할을 맡고 있고, 러시아에서도 볼가(Volga)강과 돈(Don)강을 잇는 운하, 볼가강과 발트해를 잇는 운하 등은 아직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바다와 바다를 이어주는 수에즈(Suez)운하 파나마(Panama)운하를 덮을 운하는 없다. 이번에 물길이 막혀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수에즈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운하이고, 파나마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이어준다. 지도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되지만, 영국을 떠난 선박이 아프리카 남쪽을 돌아서 인도, 중국, 일본 등지로 올 경우와 수에즈운하를 통해 올 경우, 거리상 약 10,000㎞의 차이가 난다.
옛날부터 존재한 이집트 운하
수에즈운하의 원조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등 대형 건축물에 대한 토목기술이 뛰어났던 이집트였지만, 막대한 인명 피해만 내고 몇 차례 실패했고, 이집트를 침공한 페르시아에 의해 완공돼 이후 수송로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나일강과 연결된 고대 수에즈운하는 약 1,000년간 이용되다가 서기 767년 퇴적물 등으로 완전히 막혀버렸다.
현재 이용되는 수에즈운하는 프랑스 외교관 출신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1805~1894)가 프랑스와 이집트에서 주주들을 모집해서 설립한 주식회사가 공사를 맡아 10년만인 1869년 11월 완공했다. 영국은 인도와 중동, 중국 등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지역과의 신속한 이동과 수송을 위해서는 수에즈운하가 꼭 필요했으나, 운하는 프랑스 수중에 있어 계속 눈독을 들이던 중, 1875년 재정난에 빠진 이집트 정부가 수에즈운하 주식을 통째로 팔자, 이를 인수해 운영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후 영국은 수에즈운하 보호라는 명분으로 영국군을 이집트에 파견해, 주인 행세를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2년 나세르를 중심으로 한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이집트의 권력을 장악했고, 1956년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한다. 영국이 쫒겨난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고마웠다”고 그냥 인사를 하고 물러갈 영국이 아니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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