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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93):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44): 김대중에서 문재인 정부

2019년 08월 20일(화) 15:43 [주간문경]

 

 

↑↑ 강성주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주)문경사랑

 

앞에 살펴본 것처럼 일본은 한국과 새로 맺을 어업협정에 대비해 단계적으로 자락을 깔아왔다. 왜냐하면, 한일 국교정상화 때인 1965년 한일간 기본조약과 함께 조인한 한일어업협정은 새로운 해양법 시대(1994년 발효)를 맞아 개정이 필요했는데, 일본은 치밀하게 이에 대비해 왔다.

새로운 <유엔 해양법 협약>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각국은 최대 200해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갖는다’인데, 한국-중국 간의 서해 또는 한국-일본 간의 동해는 두 나라가 마음 편하게 200해리(370km)를 주장할 수가 없다. 즉 서로 겹치게 돼 경계선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 겹치는 수역을 ‘중간수역(한국)’ 또는 ‘잠정수역(일본)’이라고 부르는데, 독도가 이 애매한 수역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겹치는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것이 협상이나 외교의 주요한 의제가 될 텐데, 우리 외무부나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치밀하게 준비해 오지 않고, 대통령 한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지만, 바닷가 출신 대통령이라고 해양법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대통령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통령의 지적 수준이라는 것이 대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의 이런 간극을 메꿔주는 것이 해당 분야의 공무원이나 자문 교수, 언론 등 전문가들이 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김영삼 정부는 1997년 3월부터 일본과의 새로운 어업협정을 논의하기 위해 7차례나 만났으나, 마무리 짓지 못하고 김대중 정부(1998.2)로 넘겼다.

한일 간의 새 어업협정은 1998년 11월에 서명되고 이듬해 국회의 비준을 받는다. 그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에 독도를 팔아먹었다”는 루머가 나돌기 시작해 지금도 이 말이 떠돌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 한.일 어업협정은 DJ 정권에서 최종 타결됐지만, 문제의 조항을 수용한 것은 YS정권이었다”라고 말한다. 또 “어업협정은 영토 영유권 문제와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이 말들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외교부나 경제부처 관계자들은 지금도 김영삼 대통령의 ‘버르장머리’ 발언으로 한국이 어업협정에서 이렇게 당하고 또 독도 문제도 시끄럽게 되면서 손해를 봤다고 말한다. 그리고 1997년 말의 외환 부족 사태 소위 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당시 부총리를 지낸 강경식 씨의 회고록(‘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보면, 1997년 여름에서 가을, 동남아시아에서 금융 불안이 시작되면서 한국의 외채 상환 능력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된다.

만기가 된 단기 외채의 기한을 연장하는 갱신비율(Roll Over Rate)이 평소 90% 이상에서 60% 이하로 떨어지고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한다.

당시 재무부는 평소에 하던 대로, 일본 측에 “돈 좀 빌려달라”고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한다(1997.11). 그런데 평소와 달리 일본 측은 “자금난 해소를 위한 지원은 IMF를 통해서 하도록 미국과 일본이 서로 합의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뒤 한국은 치욕적인 사태를 겪었다.

소위 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그렇다. 꼭 믿었던 거래처나 상대방이 돈을 융통해 주지 않으면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는지, 당해본 사람은 안다. 는 그 동안 우리 경제가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쌓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불거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대비를 잘 했다면 피할 수도 있었다는 전문가들도 많다.

다시 독도 문제로 돌아가, 일본과 새로운 어업협정을 맺고 또 일본 국왕을 ‘천황’으로 불러 주고,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수입개방을 결정한 김대중 정부 시절, 독도 문제가 따로 불거지지는 않았다.

특히 1998년 10월 8일 채택한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일명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근사한 선언으로 평가받는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일본의 식민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며 사죄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총리의 역사 인식 표명을 평가하고 양국 관계를 미래 지향적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영화 등이 한국에서 상영되고, 일본에서는 한류(韓流) 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러한 훈풍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찰이 있었지만,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일본에서 반한(反韓)물결이 일기 시작해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고 있다.

이어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말 한.일 간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인 해결’에 합의했다.

더구나 뒤를 이은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 2주년이 되는 2017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지경에 이른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은커녕 한일 간에는 ‘문제가 문제를 데리고 다니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국가 간의 합의를 정권이 바뀌었다고 무효로 선언하는 것에 대해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일본을 편들기 위한 말이 아니다. 일본과의 이러한 상황은 현 문재인정부가 온 역량을 기울여서 추진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서는 분단 상태의 해소 등에 관한 일본과 미국의 영향력 등을 감안할 때 도움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외교는 내치(內治)의 연장이라고 하는 말은 외교를 들여다보면 내치가 보인다는 말 아닐까? 2019년,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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