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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92):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43):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 ②

2019년 08월 09일(금) 15:17 [주간문경]

 

 

↑↑ 강성주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주)문경사랑

 

오랜 민주화 투쟁 끝에 집권한(1993.2) 김영삼 대통령은 해방 50주년이 되는 1995년, 조선총독부 청사(구 중앙청) 철거를 결정하는 등 집권 이후 “역사 바로세우기”를 추진하며 일본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권위주의 시대가 끝나고 처음으로 문민정부가 등장했다는 자부심도 컸다.

그 약간 앞서 1991년 8월 14일, 김학순(1924~1997) 할머니의 위안부 증언이 처음으로 나와 세상을 뒤 흔든다.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입니다…….” 50년 가까이 가려져있던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수백 명의 피해자가 뒤따랐고,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 필리핀, 중국, 인도네시아, 네덜란드인 여성 피해자까지, 일본의 전쟁범죄는 끝이 없었다. 감(感)의 정치인 김영삼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취임 직후 김영삼 대통령은 전쟁 범죄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일본 측에 요구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직접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일본 정부는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관방장관이 일본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를 발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무라야마(村山) 담화’도 2년 뒤에 나온다. 일본 패전 50년인 1995년 8월 15일이다.

사회당 소속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1924~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통절(痛切)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때만 해도 일본은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 독도 문제가 아직 선반 위에 얹혀 있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일본이 각 지방에 학교도 세우고, 서울에 경성제국대학을 세워 교육 수준을 일거에 높였으며, 철도건설 항만정비 간척수리를 하고, 산에 나무를 심었다” 한 마디로 “한일 합방으로 일본이 좋은 일도 했다”고 에토 다까미(江藤隆美) 총무처장관의 망언(1995년 10월 비보도를 전제로 이야기한 것이 뒤늦게 11월 7일 보도됨)이 나왔다. 일본 지도층의 망언릴레이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이 강하게 반응했다.

며칠 뒤 11월 13일, 중국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장쩌민(江澤民,1926~ )주석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튿날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 석상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말했다.

“내가 취임 후 일본의 총리가 네 번 바뀌었으며, 네 사람 모두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 마다 나는 역사 인식을 바로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과거 식민지로서 우리에게 그렇게 잔혹하게 한데 대해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의 토대위에서 미래로 나가자고 얘기했다. 그런데도 망언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을 포함해 건국 후 서른 번은 넘을 것이다. 이번에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치겠다.”

우리도 개인 간에 이 말을 간혹 쓰지만,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말은 국가 간이나 국가 정상이 상대방에 대해 쓸 말은 아니라고 본다. 일본 언론들이 흥분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조용했다. 이상했다.

해가 바뀌어 1996년 2월 9일, 김영삼 대통령은 독도에 선박 접안이 가능한 부두 시설 공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반응했다. 하시모토류타로(橋本龍太郞, 1937~2006) 수상은 “한국의 독도 접안 시설 공사는 감정으로 대처할 문제가 아니라 배타적 경제수역을 설정할 때 실무적으로 협의할 문제”라고 말한다.

이 말은, 94년 11월에 발효된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앞으로 한.일 간에 200해리 경제수역을 설정할 때 독도를 기점으로 하겠다는 말로, 선반에 얹어 두었던 독도를 내려놓고 정식으로 다투어보겠다는 말인 것이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뜻이다. 말은 해양법이지만, 실질은 영토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다. 일본의 이 술책에 김영삼 대통령이 넘어간다.

한 달 뒤인, 96년 3월 초 방콕에서 열린 제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하시모토 총리는 “유엔해양법협약의 비준 문제가 양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경계 획정에 대해 협의를 했으면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독도는 한국 땅이요. 영토 문제와 관계없다는 전제하에서 협의해 나가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통령이 이에 대해 “경계 획정이라니?” 라며 크게 화를 내면서 일언지하에 딱 잘라야 하는데, 실수를 한 것이다.

석 달 뒤인 96년 6월, 제주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하시모토는 방콕 때 보다 더 진전된 발언을 한다. 하시모토의 어업협정 발언에 대해 김 대통령은 “어업협정과 영유권 문제를 별개의 문제로 하여 해결하자”고 말한다. 당시 한국 언론은 그냥 넘어갔지만, 외교부장관을 지낸 김동조는 2000년에 나온 <냉전시대의 우리 외교>라는 회고록에서 “어업협정과 영유권 문제를 별개로 한다는 것은 한.일간에 독도 영유권 문제가 존재한다는 일본 측 주장을 인정하는 것으로 ‘독도는 한국의 명백한 영토로 분쟁과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라는 한국의 원칙과 다른 것이었다”라고 지적했다. 김 대통령이 일본측의 노림수에 말려 들어간 것이다.

다시 97년 1월 일본 규슈 벳푸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 정상회담을 마치고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 라고 추상적으로 정리한 데 비해, 하시모토는 “..... 경계 획정 및 어업협정 교섭에 관해서는 그 간의 회담에서의 합의사항을 기초로 영유권 문제와 분리하면서 교섭을 촉진하며 계속 노력을 기울이기로 재확인했다.....”는 문안이 들어간다 (1997.1.26.,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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