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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90):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41): ‘독도 폭파와 밀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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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7월 22일(월) 09:01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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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성주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 (주)문경사랑 | | 앞에서도 말했지만, 식민 지배를 오랫동안 겪은 한국이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9년 지금에도 <북한-일본>, <북한-미국>사이에는 국교가 수립돼 있지 않다. 더 예를 들어 보면 중국(공산)과 미국은 1979년 1월에 수교하고, 일본과 중국도 1972년 수교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 국교가 정상화 된 것도 노태우 대통령 말기인 1992년 8월이었다.
한일 회담 당시 한국에서도 반대가 많았지만(1964년 ‘6.3 사태’ 등), 일본에서도 야당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일본이 다시 제국주의적인 욕심을 내서 한국에 진출하려고 한다, 북한은 배제하고 남한과 하는 반쪽 짜리 국교정상화다,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교섭이다” 등등의 이유로 반대가 심했다.
한일 두 나라는 국내에서 이처럼 반대가 만만찮았지만, ‘세계사의 큰 흐름’이라는 대의명분을 걸고, 국교정상화를 위해 대화를 이어갔다. 물론 미국의 압력이 두 나라에 공히 작용하고 있었다.
세계는 동서 냉전으로 미국 권 대 소련 권으로 치열하게 대결하는 상황이었다. 중국 소련 북한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공산주의의 팽창에 대한 한-미-일 삼국의 공동 대처, 경제 발전 단계로 볼 때 미국-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구조적인 협력관계의 완성 또 한.일 두 나라의 국내 정치적인 필요성 등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일본은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에 임하면서 “①청구권은 구체적인 자료에 의해 계산한다 ②패전하면서 일본인이 한국에 두고 온 재산을 감안한다 ③청구권은 38선 이남만 계산한다. ④독도는 역사적 사실과 국제법에 비추어 의심할 여지없이 일본의 영토이다”라는 전략을 세웠다(1961.12.25., 일본측 구술서). 일본은 이런 전략을 갖고 대화에 나섰다.
누차 이야기 하지만 영토 문제에 민족이라는 실체 없는 주인이 얽히면, “흙 한 줌, 돌멩이 한 개”도 문제가 되려면 되는 것이다. 오죽 머리가 아팠으면 한.일 양 쪽에서 “차라리 폭파해 버리자”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기록을 보면 독도를 폭파해 없애버리자는 이야기는 일본 쪽에서 먼저 나온다. 일본은 청구권 액수를 낮추기 위해 독도 카드를 수시로 꺼내 활용한다.
1962년 9월 3일, 도쿄에서 열린 제4차 예비회담에서 이세키유지로(伊關佑二郞) 외무성 아시아국장이 “청구권 문제가 대충 정리되면, 독도 문제도 그 때 논의하게 됩니다” “아니, 독도 문제를 왜 꺼내는 겁니까?”(한국측 최영택 참사관) “사실 독도는 생각보다 가치가 없는 섬입니다. 히비야(日比谷)공원 정도의 크기로(약 4만 9천평) 폭파시켜 없애버리면 문제가 해결되겠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약을 올렸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혁명정부 지도자들은 마음이 급했다. 앞선 장면 정부가 1961년 5월에 발표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그대로 복사한 군사 정부는 경제적인 성과를 국민들에게 증명해야만, 쿠데타의 불가피성 그리고 정부의 정통성이 확립될 텐데, 일본이 이를 약점 잡은 것이다.
이에 당시 2인자였던 김종필 중앙정보부장(KCIA)이 나선다. 소위 <김종필-오히라 회담>이 그것이다.
김종필 중정부장은 회담의 조속한 진행을 위해 62년 미국으로 가던 길(10월)과 오던 길(11월)에 일본에 들러 일본의 오히라마사요시(大平正芳) 외상과 만나, 매듭 풀기에 나선다.
여기에서 “6억 달러+알파”라는 한일 간 청구권에 대한 큰 틀이 합의된다(김종필-오히라 메모). 오히라 외상과 만난 뒤 서울로 가는 길(11월 13일)에 김종필씨가 한국 기자들을 공항에서 만나 한 말이 ‘독도폭파론’이다.
김씨는 “독도에서 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갈매기 똥도 없으니 폭파해 버리자고 말한 일이 있다”고 농담을 했는데, 이 말이 와전돼 김종필씨가 독도를 폭파해 버리자고 먼저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 전 총리가 말하는 사실은 이렇다.
김종필(1926~2018)은 2016년에 펴낸 <김종필 증언록>을 통해, 오히라 외상과의 몇 시간에 걸친 회담이 끝날 무렵 오히라 외상이 독도 문제를 제기하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독도 문제는 오늘의 의제가 아니지 않느냐”며, “당신들이 무슨 소리를 떠들고 난리를 쳐도 독도는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독도를 폭파하면 했지 당신들한테 줄 수는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김 전 총리가 ‘폭파’라는 소리를 하기는 했다. 그리고 오히라 외상과의 11월 회담 이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맥조지 번디(McGeorge Bundy, 1919~1996) 케네디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과의 대화에서 독도가 화제에 올랐을 때도 “독도를 폭파했으면 했지, 일본에 넘길 수 없다. 그들이 전쟁을 해서 빼앗을 생각이면 우리도 전쟁으로 맞서겠다”고 말하자, 번디 안보보좌관이 자신의 기개를 알겠다는 듯이 마구 웃었다고 기록했다.
그러면서 김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을 배반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이 미 의회 청문회 등에서 “JP가 한일회담 때 독도를 폭파하려 했다”는 등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김 전 총리는 또 1965년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가 한일회담 최종 타결 전에 자신의 셋째 형 김종락(金鍾珞)과 함께 일본을 방문해 “독도 문제를 ‘미해결의 해결’ 상태로 두자는 합의 문서를 교환했다”는 이른바 ‘독도밀약설’도 헛소문이라고 증언했다. ‘독도밀약설’의 진위는 앞으로 더 연구해야 될 과제로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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