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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87):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38): 독도 의용수비대’

2019년 06월 21일(금) 16:06 [주간문경]

 

 

↑↑ 강성주
재경문경시향우회장
전 포항문화방송 사장

ⓒ (주)문경사랑

 

이승만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강화(평화)조약>이 발효되기 몇 달 전에 <평화선>을 선포하면서 독도 지키기에 나섰지만, 일본도 집요했다. 그 당시 한국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나라의 존망(存亡)이 걸린 전쟁을 하고 있었다.

한 기록을 보자. 휴전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 6월 27일 일본의 수산청 소속 선박 한 척이 몰래 독도에 접안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말뚝[나무 기둥]과 팻말[게시판]을 세운 사건이 일어난다.

이 말뚝에는 “시마네현 오치군 고카이촌 다케시마(島根縣 隱地郡 五箇村 竹島)”라고 쓰여 있었다. 또 팻말에는 “다케시마(연안 도서를 포함)의 주위 500m 이내는 제1종 공동어업권(해초, 패류)이 설정되어 있으므로 무단 채취를 금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자기 땅이라는 말이다(일본의 제 4차 침범). 울릉도 어민들로부터 이 소식을 접한 관할 울릉경찰서는 경기관총을 장착한 소형 선박으로 독도 주변을 순찰한다.

한 달도 지나지 않은 7월 12일 오전 11시경, 울릉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으로 된 순라반(巡邏班)은 일본 해상보안부 소속 순시선 헤쿠라호(450톤급)와 조우한다(제 5차 침범). 이 당시 독도에 갔던 울릉도경찰서 최헌식 경사(1923년생)의 진술이다 (주강현, <독도강치멸종사>).

“..... 일본인들이 세운 팻말을 뽑아 버리고 왔는데, 몇 달 뒤에 팻말이 다시 섰다고 어민들이 신고해서, 또 갔습니다. 그 때는 중고등학교 교사 두 명도 ‘독도를 연구한다’고 해서 동행했습니다. 이번에는 팻말이 잘 뽑히지 않아, 살펴보니, 세멘을 부어 놓았어. 그래서 톱으로 베어서 싣고 오려는데 일본 순시선이 와요. 이놈들이 와서 전 같으면 보트를 내릴 터인데, 이렇게 보니 우리쪽에 경찰관이 보이거던, 그래서 우리가 200m 정도 다가갔어. 교사 2명 등 모두 넷이 올라갔어. 선장실로 안내하더라고. 나는 일본 말을 잘 하는데, 일부러 우리말을 썼고, 교사들이 통역을 했어. 일본 선장이 ‘당신들 뭔데 우리 영역에 왔냐?’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무슨 소리냐? 당신들이 왜 우리 영역에 들어왔냐?’ 이러면서 한참 다투다가 ‘대나무 한쪽 없는 섬을 독도라고 해놨는데, 대[竹]도 없는데 다케시마라, 그건 중요하지가 않다. 우리는 조선시대 때부터 강원도 감찰사가 사람을 보내 조사하고 매년 보고해 왔어. 울릉도 산에만 올라가면 독도가 환히 보이는데, 그냥 갔겠는가? 발견하고 보고하고 이름도 짓고, 다 우리 영토라 해놨는데 ... 일본이 착각한 거 아닌가? 울릉도 앞에 죽도가 있는데, 거기 대나무[竹]가 많다. 거기가 죽도인데, 거기가 일본 사람 소유인데, 거기서 농사 짓다가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거기 섬을 이야기 하는 거 아닌가?’ ......”

이 일이 있은 뒤, 한국정부는 독도에 경비 초소를 짓는다. 초소는 1년 뒤인 1954년 7월에 완공된다. 경비 초소는 동도(東島)에 위치한다. 지금도 경찰관들은 동도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무렵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를 지키기 위해 독도 의용수비대(獨島義勇守備隊)를 결성해서 활동했다. 전쟁을 막 끝낸 정부는 아직 정신이 없고, 전쟁을 겪은 국민들은 용감했던 시기였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민간인이 홍순칠(洪淳七, 1929~1986)이다. 홍씨는 울릉도에서 태어나 국방경비대에 입대해 군인이 됐고, 6.25전쟁 중 원산 전투에서 부상해 1952년 7월 특무상사로 전역한다.

전쟁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의협심이 강한 홍씨는 고향에 돌아와, 독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행패에 분노해 “그냥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부산에서 소총과 수류탄 등 무기를 구입해 뜻 맞는 울릉도의 제대군인들을 모아, 독도 경비에 임한다. 수비대는 15명으로 된 전투대 2개 조, 울릉도 보급․연락요원 3명, 예비대 5명, 보급선 선원 5명 등 모두 45명으로 구성됐다.

홍씨는 독도에 접근하는 일본 수산고등학교의 실습선을 일본으로 돌려보내기도 하고,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총격전을 벌여서 퇴치하기도 했다고 기록했다. 또 나무로 대형 포(砲) 모형을 만들어 설치해 놓기도 하면서, 일본인과 선박들의 접근을 막았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독도의용수비대는 활동 기간, 인원, 활동 내용 또 무기 구입 등 과장이나 허위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돼, 지금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예산 129억원을 들여 2017년 10월에 울릉도에 준공된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에 정리된 내용을 보면, 독도의용수비대는 민간수비대원 33명이 1953년 4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3년 8개월간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 여러 단체 등에서 찾아내고 또 감사원의 감사 등을 통해서 나타난 사실은 ‘민간의용수비대의 활동 기간은 1954년의 8개월 동안이고, 인원도 33명이 아니라 17명이고, 16명은 독도에 가지도 않았다’ 고 정리된다.

그리고 이들 의용수비대원들 가운데 정원도, 서기종, 김영호씨 등은 1954년 12월 31일자로 울릉경찰서에 경찰관으로 특별 임용된다. 이로서 민간인에 의한 독도의용수비대는 해체되고, 1955년 1월부터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가 독도 경비의 책임을 맡게 되고, 그 이후로도 경찰이 그 책임을 지금까지 맡아 오고 있다.

그리고 54년 8월 10일, 독도 등대도 점등(點燈)된다. 6.25동란이 끝난 지 1년여가 지난 이 무렵 한국 정부도 여유를 되찾아, 54년 9월 독도 풍경을 담은 보통우표 3종 200만장도 발행한다. 한국의 실효적 지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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