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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62):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13): “독도, 일본 땅이 아니다”

2018년 11월 13일(화) 09:56 [주간문경]

 

이쯤 되면 우리는 “일본이 언제부터 한국을 침략할 마음을 먹기 시작했을까?” 일본의 소위 정한론(征韓論)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편입한 것, 즉 직접 행동으로 옮긴 것이 1905년이라면 그 얼마 전부터는 그런 마음을 먹었을 것이 아닐까?’ 라는 합당한 의심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개인의 행동도 그럴텐데, 하물며 한 국가가 남의 영토를가로채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준비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본측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은 청일전쟁 때인 1895년 <센카쿠 열도>를 무주지라면서 자기 영토로 편입했고, 러일전쟁 때인 1905년 <독도>를 자기 땅으로 편입한 사실이 나타난다. 그래서 일본이 언제부터 남의 땅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가가 궁금해 진다. 기록을 보면 일본이 해외에 식민지를 갖고자 하고 주변의 영토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미국에 의해 강제 개국(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을 당한지 얼마되지 않은 때부터다. 당시 일본 지도자들은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국(開國)을 당했으니 일본도 빨리 힘을 길러 다른 나라를 침략(侵略) 또는 개국을 시켜야지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랬듯이 일본이 강제 개항과 관련해(즉, 일본으로 서구 열강이 막 몰려들기 시작하던 시기는 서구열강들이 아편전쟁으로 중국이라는 ‘엄청난 시장’의 문을 열고난지 10년 정도가 지난 시점이다.) 쇄국파와 개항파로 갈리고 국내 정치와 관련해서는 존왕파(尊王派)와 막부파(幕府派) 등으로 갈라져 서로 싸우는 혼란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당대의 지식인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일본 사람끼리 패를 갈라 싸울 때가 아니다. 그 보다 일본도 빨리 국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조선(朝鮮)과 만주(滿洲)를 침략해 서양인들에게 잃은 이익을 만회해야 한다”(1855).

요시다 쇼인은 명(命)이 길지는 않았지만 일본 우익의 효시(嚆矢)라는 평을 듣는 교육자이다. 그에게서 배운 제자 기도 다카요시는 한발 더 나간다. “비록 우리(존왕파)가 승리하기는 했지만 막부파의 불만이 걱정이다. 막부파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조선을 침략해야만 한다”(1867). 기도 다카요시,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등과 함께 일본 ‘메이지 유신 3걸(明治維新 三傑)’중 한 명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도 이렇게 말했다. “온 세계 열강이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혈안이 되어 가는 이 때 우리도 서둘러 그 대열에 끼지 않으면 메뚜기 떼가 휩쓸고 간 빈 밭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까운 이웃나라 조선(朝鮮)이라도 일단 확보해 두어야 한다”

또 1861년에는 이런 일도 기록돼 있다. 이 내용은 사실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쿠릴(Kuril)열도 영토분쟁과도 관련이 있다. 1861년 2월 러시아 군함이 일본의 쓰시마섬(對馬島)에 나타나 섬 주민들을 살상하고 쓰시마 번주(藩主)에게 면담을 강요한 사건이 있었다. 제정 러시아가 쓰시마를 먹을 욕심으로 관련국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전세계를 떠돌던 러시아에게 쓰시마는 엄청난 보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세계 제1의 강대국 영국(英國)이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이 일이 있은 얼마 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거문도(巨文島)를 2년간(1885~1887) 무단으로 점거했다. 이에 러시아가 청 나라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영국이 물러가지 않으면 러시아도 한반도의 일부를 점거하겠다’고 위협했고, 러시아가 ‘조선의 영토를 점거할 의사가 없다’고 밝힘에 따라 철수함.

그 때는 이런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던 그야말로 弱肉强食의 시대였다) 영국의 강력한 항의로 러시아가 물러가자 일본 안에서는 충격과 함께 조선 정벌론(征韓論)이 더욱 거세진다. (일본은 정말 이상한 나라이다) 당시 일본 여론은 “일본이 이렇게 러시아에게 당한 원인은 쓰시마번이 허약해서 그런 것이고 쓰시마가 이렇게 허약해진 원인은 조선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쓰시마와 무역(貿易)을 하지 않아서이다. 그러니 이참에 조선을 정벌하든지 해야지, 그냥 두면 안되겠어” 대략 이런 논리가 휩쓸게 된다.

1868년 소위 메이지유신의 근대화 작업이 시작되면서 막부 시대에 대접받던 무사(武士) 계급이 몰락하게 된다. 마치 100년 간의 전국시대(1467~1573)가 끝나고 무사계급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임진왜란(1592)을 일으키던 시대와 흡사한 상황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도요토미는 할 일이 없어진 무사들에게 땅과 전리품을 챙겨주기 위해 조선을 침략을 한 것이아닌가? 그로부터 약 300년이 지나고 메이지유신을 시작한 일본은 새 정부(메이지정부) 수립 소식을 전하기 위해 조선에 사신을 보내면서(1868.1.14.) 서계(書契)를 전달하는데, ‘봉칙(奉勅)’이라는 용어와 형식으로 서계를 보낸 것이다. 봉칙이라면 제국의 황제(皇帝)가 제후(諸侯)에게 보내는 것인데, 말이 안되는 수작이었다.

당연히 조선 정부[興宣大院君]는 “이런 오만방자한 놈들! 언제부터 일본이 우리 위에 있었나!”라면서 국서를 뜯지도 않고 돌려 보낸다. 일본의 계산된 행동이었지만, 그걸 알 수가 없었던 조선 정부였다. 우리 민족의 비극 또 독도의 운명이 달라지는 단초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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