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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61):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12): “독도, 일본 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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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3일(화) 09:54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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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1785년 일본에서 나온 <삼국접양지도, 三國接壤之圖>를 한번 보자. 이름에서는 (일본 한국 중국 등) 3국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까지 표시돼 4 나라에 관한 지도이다. 이 지도는 당시 일본 최고의 실학자이자 사상가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1738~1793)가 간행한 <삼국통람도설, 三國通覽圖說>이라는 책에 실린 부록 지도 5장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자의 <삼국접양지도>와 <대일본지도> 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색깔인 푸르스름한 녹색이 아니라 조선의 색깔인 황색으로 표시돼 있어, 동해상의 두 섬이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야시 시헤이는 그것만으로는 미흡했던지, 이 두 섬 아래에 ‘조선의 소유’ 라는 글자까지 적어 두었다. 이 지도 상 두 섬 가운데 큰 섬은 죽도(竹島)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앞에서도 여러차례 나왔듯이 일본은 그 당시 울릉도를 죽도라고 불렀다. 또 <삼국접양지도>에도 <은주시청합기>에 나오는 글귀를 본떠 울릉도와 그 옆의 작은 섬 아래 “이 섬에서 은주(오키섬)를 바라보고 조선도 본다”라고 적어 놓았다. 하야시 시헤이는 이 책에서 <삼국접양지도>를 만들 때 (지난 번에 설명한)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 1779>를 참고했다고 적어 놓았다.
다시 시간이 흘러 1836년, 일본 하마다번(浜田藩) 출신의 뱃사람 아이즈야 하치에몬(會津屋八右衛門)은 막부의 도항 금지령을 어기고 울릉도(竹島, ‘다케시마’)로 건너가 일본도 등 무기를 판매하고 울릉도의 나무를 베어와서 팔다가 발각돼 사형에 처해졌다(1836.12.23. 선고) 재판 기록을 보면 하치에몬은 마쓰시마(당시 일본에서는 獨島를 ‘마쓰시마’, 松島라 불렀다)에 간다고 거짓말을 한 뒤 울릉도까지 넘어간 것으로 돼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1837년) 에도 막부는 전국에 “다케시마 도해금지령(竹島渡海禁止令)”을 다시 내린다. 그 내용은 이렇다. “울릉도는 예전에는 호키(伯耆) 요나고(米子) 주민들이 도해하여 어업 등을 행한 곳이었으나, 겐로쿠 시대(1688~1707)에 막부(幕府)가 조선국에 건네 주셨다. 그 이후 도해를 금하는 명령이 내려진 곳이다. 모든 외국으로의 도해는 엄히 금하셨으므로 향후 위의 섬에 대해서도 똑 같이 명심하여 도해하지 않아야 한다”
이 하치에몬 사건에서 일본 사법당국이 사용한 지도 즉, “하치에몬이 법을 어기고 외국(조선) 땅 다케시마에 갔다”고 처벌 준거가 된 지도가 <다케시마방각도, 竹島方角圖, 1838년>인데, 이 지도에는 독도(당시 일본 이름은 마쓰시마, 松島)와 울릉도(당시 일본 이름은 다케시마, 竹島) 이 두 개의 섬이 조선 땅을 나타내는 붉은 색으로 돼 있고, 일본 영토는 노란색으로 구분돼 있다. (일본은 1905년부터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부르기 시작하고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했다. 이 두 섬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명칭이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어, 이해가 참 어렵다!) 하치에몬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안용복 사건 발생 당시 울릉도 도해 면허를 얻었던 오야(大谷) 가문의 지도 등을 참조해 자신이 실제 도항한 경험을 토대로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에도막부는 18세기 후반부터 천체 운행과 역법(曆法) 등을 연구하는 기관인 천문방(天文方)을 설치해 운영했는데, 이 천문방 소속 관리인 다카하시 가게야스(高橋景保)는 막부의 공식 지도인 <일본변계약도,日本邊界略圖>라는 지도를 1808년 제작했다. 이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해(朝鮮海)’ 안에 기록돼 있다. 이 지도에서 울릉도는 완릉도(宛陵島)로, 독도는 천산도(千山島)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완릉도라는 이름은 울릉도를 중국에서 중국식 발음대로 표기한 것으로 잘못된 이름이다. 또 천산도는 당시 독도의 이름인 우산도의 한자 于를 千으로 잘못 써서 생긴 명칭이다(이런 실수는 안용복도 저지른 적이 있다. 안용복은 우산도의 于를 아들 子자를 써서 ‘자산도’라고 했다). 에도 막부의 공식 지도인 이 지도의 중요성은 동해(東海)를 ‘일본해’가 아니라 ‘조선해(朝鮮海)’라고 쓴 점도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다.
1821년, 에도 막부는 <대일본연해여지전도,大日本沿海輿地全圖>라는 지도를 펴낸다. 이 지도는 일본 전국을 처음으로 걸어서 측량해 만들어진 일본 최초의 실측 지도라고 평가 받고 있으며, 이 지도를 제작한 이노 타다타카(伊能忠敬,1745~1818)는 지금도 일본에서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다.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를 만든 조선의 古山子 金正浩(1804~1864)에 비할 수 있다.
김정호는 이노에 비해 50년 정도 늦게 태어 났지만, 이노는 50세가 넘어서 지도를 만들기 시작해 이 두 사람은 큰 시차를 두지 않고 지도에 온 인생을 바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도쿄에서 가까운 일본 지바(千葉)현 카토리(香取)시에 가면 이노의 고향 집에 꾸민 <이노 타다타카 기념관>을 볼 수 있다. 일본은 이노가 제작한 이 지도(일명,伊能圖)를 ‘예술성과 정확성을 겸비한 지도’라면서 엄청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도에는 독도와 울릉도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 땅이 아니어서 당시 막부(幕府)가 울릉도와 독도를 측량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이노가 말년에 병이 들어서 가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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