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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54):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 (5): 일본의 옛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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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3일(화) 09:38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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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은 잠시 일본의 옛 자료들은 울릉도나 독도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살펴 보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고사기, 古事記, 712년>는 일본 열도를 만든 신(神)들의 이야기이다.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땅과 섬들이 <고사기>가 집필되었을 당시 일본의 어디였는지가 적혀 있다. 예를 들면 현재 ‘대마도(對馬島)’의 경우는 당시의 이름인 ‘진도(津島)’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고사기>에는 신들이 홋카이도(北海道), 오키나와(冲繩: ‘바다 위에 섬들이 꼬인 새끼’처럼 이어져 있다는 뜻), 독도(獨島)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없다. 그 이유는?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일본의 고유 영토(固有 領土)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땅들은 모두 일본이 현재 외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땅들이다. 홋카이도 동북방의 <쿠릴 열도>는 러시아와, 오키나와 서쪽의 <센카쿠 열도>는 중국과, 그리고 <독도>는 우리나라와 분쟁 중이다. 이상하지 않는가? 17 세기 일본에서 제대로 된 지도가 제작되기 전까지, 일본의 공식 지도 역할을 한 <교키도, 行基圖>(668년에서 749년까지 생존했던 교키[行基]라는 승려가 만든 지도)에는 독도가 없다. 물론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도 없다. 모두 일본의 고유 영토가 아니기 때문이다.
11세기 일본은 울릉도를 고려(高麗)의 섬으로 알고 있었으며 ‘우릉도’라고 불렀다. 그 기록이 에도막부(江戶幕府 혹은 德川幕府, 1603.3~1867.11)의 일족이던 미토번(水戶藩)에서 펴낸 역사서 <대일본사, 大日本史>(1656년부터 편찬을 시작해 250년 후인 1906년에 완료함)에 남아있다.
“간코[寬弘] 원년(1004년) 고려의 우릉도 사람들이 표류해 이나바[因幡, 돗도리번의 한 주]에 이르렀다....신라 때 우르마섬 사람들이 (표류해) 왔는데 우르마섬은 바로 우릉도이다”
이 기록으로 우리는 고려인들이 동해를 표류해 일본에 표착했다는 사실과 일본이 11세기 초에 울릉도를 ‘우릉도’ 또는 ‘우르마섬’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도 한국의 각종 생활 쓰레기가 일본의 시마네현[島根縣] 바닷가에 밀려왔다는 신문 기사, 또 최근에는 북한의 목제 어선들이 표류해 일본 서쪽 바닷가인 니가타[新潟]나 이시카와[石川] 현 바닷가로 떠내려 왔다는 기사를 상기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다시 지도 이야기로 돌아가면, 1603년 집권한 에도막부(江戶幕府)는 <교키도>를 대신할 지도를 만들었다. 당시 일본에는 포르투갈의 지도 제작 기술(콜럼버스가 1492년 서인도 제도를 발견한 것이 바로 이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아서였다)이 전해져서 상당히 정교한 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 바로 <관찬게이초일본도, 官撰慶長日本圖>(‘게이초’[慶長]란 일본의 연호로 1596년부터 1615년까지를 말한다)다. 이 지도에도 독도는 없고, 일본의 북서쪽 한계는 오키섬(隱岐 諸島)으로 돼 있다. 에도막부의 두 번째 공식지도인 <관찬쇼호일본도, 官撰正保日本圖>(‘쇼호’[正保]라는 연호는 1645~1648사이에 쓰였다)에도 독도는 나오지 않는다. 일본의 북서쪽 영토는 오키섬에서 끝난다.
1667년, 일본의 공식 문서에 처음으로 독도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이즈모(出雲)구니(國, 현 시마네현 지역에 위치했던 옛 행정구역, ‘구니’ 는 서기 710년에 시작된 나라시대부터 메이지 초기까지 천여년 동안 존재했던 일본의 지방행정구역, 68개의 ‘구니’가 있었다.) 관리인 사이토 호센(齊藤豊仙)이 영주를 대신해서 오키섬으로 출장가서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한 <은주시청합기, 隱州視聽合記, ‘은주에서 보고 들은 일을 기록한 내용’이란 뜻>를 보면, 일본 북서쪽 경계는 오키섬이며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닌 그 외의 영역임을 확인하고 있다.
“은주(隱州, 은주란 현재의 오키 섬을 말하고, 당시에는 오키 ‘구니’였다)에서 1박 2일을 가면 마쓰시마(松島, 한국의 獨島)가 있고[157.5Km] 하루 정도 더 가면[87.4Km] 다케시마(竹島, 한국의 鬱陵島)가 있다. 두 섬은 무인도이고 여기서 고려를 보면 마치 이즈모[出雲]에서 은주를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본의 경계는 이 주(隱州)로 한다”
종합해 보면 일본은 8세기부터 자신들의 지도와 문헌을 통해 일본 영토의 북서쪽 끝을 오키섬(본토 시마네 반도에서 북쪽으로 50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4개의 큰 섬과 180여개의 부속 섬으로 돼 있다. 제일 큰 도고[島後]섬은 242평방킬로미터 정도이다) 까지로 한정지었다. 그리고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또는 고려]의 영토로 인식하고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 들어 두 나라는 울릉도를 둘러싸고 외교적 분쟁을 일으켰고 이 때 독도의 영유권 문제도 함께 거론했다. 바로 ‘안용복(安龍福)의 활약(사건)’과 이를 계기로 두 나라 간의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서로 다투는 외교 분쟁인 ‘울릉도 쟁계(爭界)’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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