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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토분쟁(51): 아시아의 영토분쟁-독도(獨島) (2): 이사부와 우산국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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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3일(화) 09:32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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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0년도 더 된 일이다. 1965년에 타결된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 당시 이동원(李東元,1926~2006) 외무부 장관은 “내가 집사람과 잘 살고 있는데, 어느 미친 놈이 동네에 나타나 우리 집사람을 자기 마누라라고 소리 지르고 다닌다”라는 표현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비판했다.
한국이 해방된 지 20년이 됐던 1965년 당시 독도에 대한 한일 두 나라의 입장과 70 여년이 지난 현재 두 나라의 독도에 대한 입장은 변했다. 일본은 1965년에 끝난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당시, 독도에 대한 억지 주장을 포기하고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거의 물러섰지만, 그 뒤에 생긴 일들 때문에 다시 옛날 주장을 꺼내들고 나서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일이 있을지 우리는 모른다. 이번부터는 독도를 둘러싼 한일 두 나라 간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편의상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독도(獨島)의 모습을 살펴 본다.
독도와 울릉도가 우리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서기 512년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통해서다. <삼국사기>는 고려(高麗, 918~1392) 17대 인종(재위 1122~1146)의 명(命)을 받아 김부식(金富軾)등이 1145년에 편찬한 삼국(三國)시대의 정사(正史)다. <삼국사기> 지증마립간[智證 麻立干]조에 나오는 기록이다.
“(지증 마립간) 13년[서기 512년] 여름 6월, 우산국(于山國)이 복종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우산’은 고구려 말로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독도박물관측 설명)국은 명주(溟州 :지금의 강릉)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울릉도(鬱陵島)라고도 한다. 땅은 사방 백리인데,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다. 이찬(伊湌, 신라 17 관등의 제 2등으로 진골만이 될 수 있으며, 중앙 정부의 장관급 이상 벼슬에 해당한다.
태종무열왕 김춘추(金春秋)의 아버지 김용춘(金龍春)이 이찬으로 진평왕의 둘째딸과 결혼해 김춘추를 낳았고, 김춘추도 이찬에 이르렀는데, 알천[閼川, 신라 중기의 장군, 활동 연대 636~654]의 양보로 이찬으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이사부(異斯夫, 진흥왕 때의 장군, 제 17대 내물왕의 4대손으로 왕실의 중신이다)가 하슬라주(何瑟羅州, 지금의 江陵 일대) 군주(軍主)가 되어 말하길 ‘우산국 사람은 어리석고도 사나워서 힘으로 다루기는 어려우니 계책으로 복종시켜야한다’고 하고, 바로 나무로 사자(獅子)를 만들어 군선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이르렀다. 이사부는 거짓으로 말하였다.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풀어, 밟아 죽이겠다“ 그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즉시 항복하였다”
신라 장군 이사부가 동해의 섬나라 우산국을 정복해 신라 땅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신라를 이은 고려(高麗, 918~1392) 때에도 을릉도와 독도는 우리 영토였다. <고려사(高麗史), 조선 세종 때 편찬된 고려 시대의 역사서>를 보면 고려 태조 13년(서기 930년), 우산국은 왕건(王建)을 찾아와 충성을 맹세하고 특산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인년(태조 13년, 930년), 가을 8월 병오일. 우릉도(芋陵島,울릉도)에서 백길(白吉)과 토두(土豆)를 보내 왕에게 토산물을 바치자, 백길에게 정위(正位, 고려 초기 관료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관직으로 1품에서 9품에 이르는 16등위가운데 7품의 13등위에 해당하는 하급 직위), 토두에게 정조(正朝, 향직의 7품 벼슬)라는 벼슬을 각각 주었다”
또 고려 현종 9년(서기 1018년)에는 이런 기록도 남아있다.
“11월, 병인일. 우산국(于山國)이 동북여진(東北 女眞)의 침구(寇: 침략)를 당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이원구(李元龜, 현종 원년 거란의 3차 침입 때 防禦使라는 직책으로 전투에 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武將 출신 관리로 보임)를 보내 농기구를 내려주었다”
또 현종 10년(서기 1019년) 7월에는 강감찬(姜邯贊) 장군에게 쫒겨난 여진족이 울릉도를 침입하자, 울릉도민들이 고려[本土]로 피난을 왔다가 다시 돌아가 전쟁 피해 복구에 힘썼다는 기록이 나오는 등 울릉도는 1,500년 전부터 변함없는 우리 민족의 생활터전이고 영토였다. 이것이 기록된 역사이다. 이에 비해 일본이 주장하는 역사 기록은 아주 엉성하고 말이 안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가 자기네 땅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주장하고 고집을 피우고 있을 따름이다. 뒤에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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