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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공 엄흥도 충절 기리는 제사 모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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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북면 내화리 충의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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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05일(목) 19:29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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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 | 충의공(忠毅公) 엄흥도(嚴興道)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한식날인 4월 6일 산북면 내화리 충의각에서 현한근 문경문화원장, 황준범 산북면장, 엄태우 아시안트레딩 회장(본보 고문)을 비롯한 영월엄씨 층의공파 후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견하게 제사를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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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 | 이날 후손들은 정성들여 준비한 제물을 충의공 영정 앞에 제상을 차려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공의 충절을 기리며 영월 엄씨 화장문파 엄재익 종손이 초헌, 아헌은 현한근 문경문화원장, 종헌은 엄주팔 후손이 맡아 잔을 올렸다.
그동안 충의공의 제사는 강원도 영월에서 후손들이 모셔오든 것을 지난 2010년부터 내화리 충의각에서 제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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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문경사랑 | | 산북면 내화리 충의각(忠毅閣)은 영월엄씨 충의공파 후손들의 집성촌인 내화리에 2007년 9월 후손인 엄태우 아시안트레딩 회장이 중심이 되어 충의공의 영정을 모신 비각과 충절의 상, 공정비를 세워 성역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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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충의공 엄흥도 영정. | ⓒ (주)문경사랑 | | 한편 충의공 엄흥도는 강원도 영월에서 호장으로 있을 때 조선 6대왕인 단종이 세조에 의해 영월로 유배와 승하하자 가족들과 몰래 시신을 수습해 현재의 장릉에 안치한 후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250여 년간 숨어 살았다.
후세에 그의 충절을 인정해 영조34년(1759년) 정문(旌門)이 세워졌고 공조참판에 추증됐다. 그 후 순조33년(1833년) 공조판서에 추증되고, 고종13년(1876년) 충의공 시호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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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래 기자 kwangri@daum.net “주간문경을 읽으면 문경이 보인다.” - Copyrights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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