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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서 12년만에 다시 태어난 사인검(四寅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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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해에 태어나는 왕의 칼 사인검, 이상선 명장의 손으로
2(寅)월 21(寅)일 새벽 3(寅)시 농암면 선곡리 고려왕검연구소서
이상선 명장, “명장은 칼을 만드는 것보다 칼이 가지는 정신부터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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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21일(일) 12:06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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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상선 명장에 의해 만들어진 사인검. | ⓒ (주)문경사랑 | | | 
| | ⓒ (주)문경사랑 | | | 
| | ⓒ (주)문경사랑 | | 호랑이해(寅年), 호랑이 달(寅月), 호랑이 날(寅日), 호랑이 시(寅時·오전 3~5시) 등 인(寅)자가 네 번 겹쳐진 21일 새벽3시.
아직 여명(黎明)이 밝아오기 전 시각에 문경시 농암면 선곡리 선암초등폐교장에서 조선조 양녕대군의 18대손이자 사인검의 명장 이상선(55) 고려왕검연구소장에 의해 영물(靈物) 사인검(四寅劍)이 탄생했다.
사인검은 범띠해(寅年) 음력 정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만든 칼이다.
조선 초부터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는 사인검은 범의 기운이 4번 겹치기 때문에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해서 영물로 불렸고, 예전에도 왕이나 왕이 특별히 하사한 공신 등만 소장할 수 있었다.
올해 2월21일은 경인년(庚寅年) 음력 정월(寅月) 8일(壬寅日)로 지난 1998년 이후 12년 만에 돌아온 사인검 제작일이다.
이상선 소장은 “왕의 칼인 사인검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신성함을 지닌 상징물”이라며 “도검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평생에 한 번은 도전하고픈 것이 사인검 제작”이라고 말했다.
충남 예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6세 때부터 검 만들기를 시작하면서 불과 싸웠고 불과 싸워 이기면 다음엔 쇠와 부딪쳤다.
그렇게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모든 것이 명품 사인검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
옛 문헌에 따르면 사인검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두 시간이다.
두 시간 동안 한 자루의 칼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도검 제작 공정의 한 단계를 이 시간에 진행하는 것이다.
그는 인시(寅時)에 고온으로 열처리한 칼을 물에 담가 식히는 작업을 반복해 칼날의 성질을 바꾸는 작업을 한다.
이를 위해 그는 1300℃가 넘는 불가마에서 엿가락처럼 늘어진 쇳덩이를 두드리고 펴서 칼날 모양으로 만드는 단조(鍛造) 작업을 끝냈다.
단조 작업은 기계의 힘을 빌리더라도 고온에 달군 쇠에 망치질을 무수하게 가해야 하고 연마 작업 역시 사방으로 튀는 불꽃과 쇳가루를 맞아가며 참아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불이 어느 정도 사그라졌을 무렵 이 소장은 유일한 제자인 아들(28)과 함께 단조와 연마 작업을 거친 45자루의 칼을 숯불 속에 집어넣고 달궜다.
그리고 마침내 인시인 오전 3시가 지나자 이 소장은 달궈진 칼을 차례로 꺼내 칼날부분을 찬물에 식히기 시작했다.
화덕 같은 불덩이에서 달구어진 시뻘건 도검이 불과 물의 조화를 이루며 화려한 불꽃과 연기를 내뿜었다.
그렇게 이 소장의 손을 거쳐 담금질이 될 때마다 신성함을 지닌 사인검이라는 새 생명으로 태어나고 있었다.
“칼 모양에 불과한 철덩어리가 인(寅)자가 네 번 겹치는 이 시간대에 담금질을 통해 신성한 사인검으로 태어나지요.”
그는 뜨거운 열기로 인해 이마에 맺혀있는 땀방울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칼을 만드는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칼 중심부에 사인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28~31개의 별자리와 글씨를 새겨야 한다.
크기가 제각각인 칼에 맞춰 나무와 가오리가죽 등으로 칼집을 만들고, 상감이나 조각을 통해 손잡이도 만들어야 한다.
그때까지 몇 개월이 걸릴지, 몇 년이 소요될지 장담할 수 없고, 담금질 과정에서 버려야 할 불량품이 몇 개나 발생했을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담금질이 끝났을 뿐이다.
이 명장은 1971년 종묘에서 영친왕 제사 때 조선의 임금이 사용했던 검을 처음 보면서부터 전통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대장간이며, 청동과 함석을 다루는 공장, 장신구를 만드는 금속공예 공방, 은장도 공방, 주물공장 등을 전전하며 칼에 대한 나름의 지식을 쌓아왔다.
최고의 검을 만들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마땅히 배울 곳이 없었던 이 소장은 그동안 배운 기초지식으로 전례 검을 제작해 1998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사인검을 선보였다.
이상선 소장은 최근 노동부로부터 전통야철도검 부문의 기능전승자로 뽑혔다. 정부가 이 소장을 사인검의 장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는 “명장은 칼을 만드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칼이 가지는 정신부터 알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일본은 공격을 위한 검으로 제작됐지만 우리나라의 검은 방어용으로 차이가 있죠. 또 우리 나라 검은 나라를 지키고 사람을 살리는 검이기도 합니다.”
그는 중국의 화려한 검과, 일본의 세련된 검이 있지만 정신에 있어선 우리의 것이 최고라고 강조했다.
김형규 기자 kimmar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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