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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주(農酒)와 밀주(密酒)

2012년 06월 15일 [주간문경]

 

 

↑↑ 허운 이창녕
가은읍 출생
전 점촌초등학교장

ⓒ (주)문경사랑

 

모내기가 다 끝이 난 6월의 들판은 벌써 녹색의 물결이 출렁이고 이루고 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보리 베기 모심기 감자케기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철이라 학교도 가정실습이라는 명목으로 며칠간씩 휴교를 하여 바쁜 일손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삭줍기라는 숙제를 내어 한 톨의 곡식이라도 허수히 버려서는 안 된다는 알뜰함을 스스로 체험하고 익히게 하는 절약과 내핍의 미덕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일철에 먹을 수 있도록 몰래 밀주(密酒)를 담아서 창고나 으슥한 장소에 감추어놓고 들일이 한창일 때 농주(農酒)로 마시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가정에서는 술을 만들어 먹을 수 없도록 하여 이를 어기면 엄한 벌과 벌금을 물렸습니다.

이유는 부족한 식량으로 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진짜 이유는 술을 만들어 파는 양조장에서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로비가 주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때는 농사가 직업인 국민이 대다수였으니 막걸리 소비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양조장에서는 쌀로 술을 빚는 것이 아니라 밀가루나 고구마 가루와 누룩이 아닌 주정이라는 것으로 술을 빚었으니 마시고 난 뒤에 술이 깰 때쯤이면 머리가 쪼개지는 것처럼 아팠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난한 살림에 돈이 없어서 사먹을 수도 없었지만 먹고 난 뒤에 머리 아픈 후유증 때문에 꺼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농촌의 일은 고되고 영양가 있는 음식도 귀하던 시절에 술에 힘을 빌려 힘든 농사일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으니 너나없이 밀주를 담가먹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나라에서 엄하게 단속하든 일들이 야속하기만 하였습니다. 술을 감추는 방법이 기묘해 지고 밀주를 단속하는 공무원과 주민과의 마찰이 심심찮게 일어났던 일들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일을 하고 새참으로 마루에 걸터앉아 농주를 한 잔씩 하고 있는데 갑자기 술 조사를 나온 공무원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런데 금방 먹은 술잔과 술 냄새는 진동을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정작 술은 없으니 조사원이 단속은 하지 않을 테니 감춘 곳이 어딘지 가르쳐 달라고 하도 애걸을 하여 할머니께서 열어 젖혔던 문을 다시 닫으니 문 뒤의 문고리에 술병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는 할머니의 지혜에 탄복을 하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팔자 좋은 사람들이야 성취와 즐거움을 위해 마시며, 또한 강하고 어질기 위해서 마신다고 하지만 농촌에서 농주를 마시는 것은 오직 일을 하기위해 마셨다는 사실을 지금의 젊은이들은 이해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이야 화학 비료가 퇴비를 대신하고 있지만 그 때는 정부에서 퇴비증산을 장려하여 퇴비를 많이 한 동네나 개인에게는 표창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퇴비 한 짐씩을 해가지고 오라는 숙제를 내어서 학생들이 퇴비를 한 짐씩 지게에 지고 등교를 하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산야에 늘려있는 풀을 베어서 논에다 넣기도 하고 마을마다 지정한 장소에 쌓아 잘 썩혀서 이듬해에 거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거름더미가 밀주를 담가두는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술이 익는 냄새가 퇴비가 만들어지는 거름 냄새와 섞여서 술 조사가 나와도 들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른도 한 사발 아이도 한 사발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농주는 보편적인 농촌의 기호식품이었으며, 좀 과하게 마셔서 다음날에 일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하였고, 가끔씩 다툼이 벌어져서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었으나, 농촌의 농주(農酒)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의 하나였습니다.

모심기 하는 날 한 잔 술을 마시고 못줄을 넘기며 부르든 농요(農謠)는 고운 추억으로 지금도 내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소(牛) 울음소리와 농요와 들밥이 사라진 들판에는 농기계소리와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우리의 정서를 멍들게 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가난하였던 그 시절이 나이를 먹을수록 그리워지는 연유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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