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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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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6월 07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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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점촌1동 산악회 | ⓒ (주)문경사랑 | 이우리재 이화령 넘기 전, 왼편 길을 따라 오르면 길은 잠시 굽어지면서 계곡을 옆으로 두른다. 솔바람을 맞고 타박타박 걷다보면, 계곡을 가르는 다리에 이른다. 이 다리를 건너면 안성마춤한 터에 크지 않은 수행도량처가 있다.
다리 앞에서 잠시 머뭇한다. 이 다리가 부처세계로 건너는 경계인 일주문, 아니 일주교(一柱橋)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일주문은 속세와 부처세계를 이어주는 경계이며 사찰로 들어서는 진입로이다. 사람들은 비로소 이곳에서부터 옷깃을 여민다.
속세와 이별했음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다리가 그 경계라고 단정하기에는 눈앞의 전각이 너무 가깝다. 차라리 이우리재 들어서는 어귀, 왼편 초입 길부터 일주문이라야 옳다. 그렇게 해야, 일찍 옷깃이 여며진다. 그리고 솔바람 맞으며 계곡 따라 타박타박 오르는 길이 더욱 정겹고 다감하다. 계곡 너머, 나무 사이로 언듯언듯 보이는 절집들이 부처님 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발을 디뎠더니 곧 보현정사(普賢精舍)이다. 사월 초파일 늦은 봄날이다. 백화산의 곱고 맑은 물이 이곳에도 흐르고 있구나. 경내를 두른 소나무들도 산 능선의 붉은 소나무처럼 곧은 정기(精氣)로 서있구나. 둘레에 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꽃들이 천연히 산꽃들과 잘 어울려 피었구나. 댓돌 위 적광전(寂光殿) 안에는 나무 부처님이 허리를 곧추 세우고 앉아 계시는데, 댓돌 아래 올망졸망하게 지은 공양간과 요사채 그리고 선방(禪房)들이 산골 집처럼 정겹다.
언젠가 바람결에 전해 들었다. 이곳 보현정사에서 매년 가을에 종교와 문화가 함께 어울리는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는 행사를 연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지역민들은 물론, 인연 있는 이들에게 불교문화와 불교와 친근한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그랬다. 그런 마음으로 경내를 둘러보았다. 담벼락 나무들 사이에는 어느 화가가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고, 길 한 켠에는 꽃과 생활도자기들을 내다 놓았다. 잠시 여유로운 사람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차인(茶人)들이 우려낸 차를 마시고 있었다.
실력 있는 어느 화가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수묵 채색화를 즉석에서 그려내어 준다. 그리고 어떤 이는 녹차 잎을 덖어 깊고 그윽한 차향을 나누어 준다.
그러는 사이 흥에 겨운 사람들은 준비한 노래방 기계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잠시 후, 그들의 흥에 전이된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모여 함께 박수를 치며 춤을 춘다.
문득, 계곡에서 어느 고운 이가 건네는 인도산 차, 짜이를 마시다가 그들이 전하는 흥취를 못 이겨 절 마당으로 뛰어갔다. 그때였다. 내가 본 것은. 스스로의 흥으로 춤을 추는 이들의 표정과 꽃과 그림을 구경하고 차를 덖고 마시는 사람들의 표정이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오롯이 있는 모습들이었다. 모두들 이곳에 한 마음으로 온전히 있었다.
어쩌면, 여기가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화엄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은, 같은 부처인 것이다. 부처님은 누구든지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무릇, 선방에서는 수행을 게을리 할 때 장군 죽비를 내리친다고 한다. 그 죽비 소리로 선승들은 스스로를 견책하면서 더욱 수행에 정진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 보현정사에서는 죽비가 필요 없다. 이미 모두가 깨달은 부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오가도 다투지 않아 시끄럽지 않다. 점심 공양밥이 모자라 한참을 기다려도 툇마루와 절 마당에 앉아 편안한 얼굴로 불평하지 않는다. 봉사하는 공양주들도 같은 얼굴이다. 부처가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죽비가 필요 없는 보현정사를 좋아하기로 했다. 하지만, 늦은 오후 죽비 소리 가득한 세상, 보현정사 밖으로 나가야 했다. 잠시 비가 내렸다.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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