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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금천 별곡

2011년 09월 08일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점촌1동 산악회

ⓒ (주)문경사랑

어느 날, 주간문경의 「창이 있는 덕승재」코너에 실린 ‘월방산 소고’ 라는 글을 읽은 어느 독자로 부터 문자를 받았다. 평소에도 졸고에 관심을 가져주어 항상 고마움을 두고 있던 터였다.

‘산양에서는 원래 금천을 경계로 산동산남으로 모든 일에서 자연 나눠졌습니다.’ 라는 글이었다.

월방산이 산북과 산양 등, 옛 주변 큰 마을의 경계를 나누었지만 산양면의 일부였던 옛 산동과 산남면은 금천이 그 경계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비단같이 맑은 내, 금천(錦川).

백두대간인 대미산과 황장산 사이의 차갓재에서 발원하여 동로면을 지나, 산북과 산양 그리고 영순면을 거쳐 삼강에서 내성천과 합수하는 낙동강의 지류이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는 영강 다음 가는 큰 내(川)이다.

무성한 갈대밭 사이로 새들이 드나들며 곳곳에 푸른 섬을 이루고, 구비진 산 아래는 기암과 괴석을 머물게 하며 곳곳에 정자를 세워 석문구곡을 태동케 한 이 내(川)는 또한 산양과 산북 사람들의 비옥한 젖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옛 사람들에게는 마을 앞 흐르는 금천의 물소리가 시름을 잊게 하는 농요(農謠), 하나의 별곡(別曲)이었으리라.

그런 금천별곡의 시작은 산양면 존도 마을, 금천 하류 산 중턱 농청대에 세워진 농청정이 좋을 듯하다.

18세기 지역의 유학자 청대 권상일이 이곳에 유유(愉愉)하면서 한적(閑寂)을 일삼았으며, 그의 제자인 근품재 채헌이 석문에 정자를 지어 고깃배를 타고 내려와 이곳을 찬탄하면서 석문구곡 중 일곡가(一曲歌)를 바쳤다. 정자 밑 바위에는 존도와(尊道窩)라는 음각이, 그 오른편 절벽에는 태고암(太古巖)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동로면의 깊은 계곡과 골짜기를 따라 쉼 없이 내려온 내는 산북면 한두리와 산양면 현리 너른 들을 사이에 두고 길게 숨을 고른다. 그리고 그 들 사이로 자신의 자양분을 아낌없이 나누어 준다. 비옥한 농토는 가문과 인본(人本)을 세워 학문에 힘쓰도록 했다. 한두리의 장수황씨 종가와 영각터, 현리의 고택 그리고 근암서원이 당시의 융성했던 지역 유학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큰 마을을 벗어난 금천은 운달산과 단산 그리고 공덕산에서 내려오는 대하천과 겹치면서 광탄, 넓은 여울 너부내를 이룬다. 근처에는 장수황씨 사당과 서원격인 영각터가 있고 지금은 천연기념물 반송이 남아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좁아지는 내와 달리 높아지는 산을 따라 올라가면 금천은 계곡이 되었다가 다시 내가 되기도 한다. 이곳에서 산북면 내화마을을 만난다. 마을에는 단종임금을 모신 충의공 엄홍도의 후손인 영월 엄씨들이 모여살고 있다.

그리고 길 가에, 뜻 있는 후손이 조상의 공적비를 세워 이를 기리고 있다. 산 아래 사과밭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상류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넓지 않은 터에 세워진 4.4미터 높이의 삼층석탑을 만난다.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내화리 삼층석탑으로 보물 제51호이다. 산 중턱도 아닌 산 아래에 터를 깎아 산을 마주하는 절을 세운 속뜻은 무엇일까. 금천은 예와 같이 흐르고 있는데 아무런 말이 없다.

그 말없음은 숫돌봉 아래 노루목고개에 6.25 전쟁 전 공비들에 의하여 숨진 경찰관들을 위해 세운 경찰전공비에 이르면 절정을 이룬다. 그 앞에 서면 저 아래 금천의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 천주봉과 국사봉을 지난 내는 협곡이 되어 잠시 석항마을을 스쳐 동로면에 이른다. 그리고 고향이 다가 왔음을 느끼고 잠시 숨을 고른다. 그때에, 마치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회귀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몸을 붉게 물들이듯 가을 날 주변 들판을 붉게 물들게 한다.

아니 산 밑 골골까지 붉다. 동로면의 오미자는 전국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최대 규모이다. 마을을 지난 내(川)는 비로소 잦아들며 청정하고 맑은 차갓마을 어귀에서 차갓재를 향해 끊어지듯 비상한다. 고향에 이른 것이다.

살펴보면, 금천은 단지 산동과 산남을 가르는 경계만이 아니다. 내(川)의 바깥은 산북면, 하류 안쪽과 바깥쪽은 산양면, 상류는 동로면으로 경계를 지어 사람들의 발길과 손길을 가두었다.

그리고 저 아래 강어귀에는 영순마을을 남겨놓았다. 금천은 이렇듯 자신이 가른 경계를 기준으로 사람들에게, 동로면에는 풍부한 산림과 맑은 계곡을 산양과 산북면에는 자연경관과 비옥한 토양으로 인문을 넓히도록 하였고 영순면에는 너른 논과 강을 주어 풍요로운 곡창 안에서 삶을 가꾸도록 하였다.

그래서 문자를 보내 준 그의 말이 맞다. 금천은 스스로를 경계로 모든 일에서 자연 나눠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사람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그 경계를 허물어 서로를 이어가고 있다.

살펴보면 처음부터 경계는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물길을 넘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 금천은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금천은 옛과 같이 나누어 준 삶의 방식에 감사하며 새롭게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다.

마을이 지닌 특성을 살리면서 큰 틀에서 함께 이끌어가는 공동의 가치, 신(新) 금천별곡(錦川別曲)을 지을 때가 온 것이다. 농청정 앞 금천의 백로는 동로 석항마을 앞 내에도 머물고 영순 오룡마을 갈대숲도 찾는다. 가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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