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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북(文化 山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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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6월 17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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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점촌1동 산악회 | ⓒ (주)문경사랑 | 산을 좋아하다보니 산북면에 소재하는 공덕산과 운달산, 동로면의 천주봉, 수리봉, 문수봉, 문복대, 황장산 등 여러 산들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산북면을 지나가게 되고, 가끔 쉬어가면서 이곳의 풍광에 익숙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마음을 끈 것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있었던, 그래서 알게 되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자연경관과 옛 유적, 이에 덧붙여 숨겨진 역사가 곳곳에 촘촘히 있다는 것이다.
산북면은 산양면과 함께 접해 있으며 그 사이 금천이 흐르고 있다. 그런 금천을 중심으로 근품재 채헌이 만든 석문구곡(石門九曲)이 산양면의 농청대를 시작으로 이곡 주암을 따라 맑고 큰 여울인 광탄을 거슬러, 거위가 노닐던 아천(鵝川)에 이르고 구곡의 끝 석문정에서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산북면은 산양면과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산과 내(川) 그리고 길이 이어져 같은 문화를 교류하면서 서로를 엮어왔다.
석문구곡은 이미 있는 제한된 자연의 풍광에 인문(人文)의 손길을 곁들였다. 그래서 자칫 멋이 덜할 수 있는 경관에 정자를 세워 풍류와 아취를 얹어 유교적 이상을 심었다.
살펴보면, 이 지역에 석문구곡이 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지역보다 유독 유학(儒學)이 고양되고 발전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잠시 지금의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찍이 이곳에 황희정승의 자손인 장수황씨가 세거(世居)하여, 한두리에 황희정승의 영정을 모신 영각과 그를 기리는 서원을 세웠다. 지금 그 남아 있는 터에는 반송이 천연기념물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산양면 현리에는 인천 채씨들이 고택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형성하여 지역 유학의 토양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주변에 북파정과 경채정 등은 물론 지취헌 등 농촌 반가(班家)들이 있다. 두 지역에서 엿보는 것은 당시 반가문화가 있었고 그들은 유학을 숭상하였으므로 이는 당시 지역유림의 번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며칠 전, 산북면 서중리에 우리 지역 최초의 서원이었던 근암서원이 준공되었다.
중종39년이었던 1544년에 창건되어 지역 유림의 중심역할을 하다가 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에 의하여 훼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지역 유림 등의 열망으로 지금에 이르러 다시 세워졌는데, 서원 사당에는 한음 이덕형과 청대 권상일 등 일곱 분의 유학자를 배향하였다.
생각하는 것은, 근암서원이 조선시대 지역의 인재를 배출한 교육기관이면서 우리 지역에 산재해 있는 유교적 문화의 토양을 마련하고 동시에 이를 집약한 상징적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이제 근암서원은 산양면 현리의 고택과 옛 정자 등 그리고 유교적 자연경관인 주암정을 비롯한 석문구곡, 장수황씨 종가와 천연기념물 반송 등 현존하는 지역 유교 문화유산을 아우르고 대표하는 상징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지금 근암서원이 주목을 받아야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근암서원은 산북면뿐만 아니라 우리 문경시가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비교하여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유교문화를 보완케 하고 시민들에게는 문화적 자긍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건물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옛 근암서원이 조선시대 우리 지역 교육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듯, 이제는 이곳에서 명실상부하게 다양한 문화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산북면에 흩어져 있는 여러 문화재를 함께 사랑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 산북면은 문화(文化)라는 보통명사를 함께 사용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문화 산북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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