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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2026년 04월 17일 [주간문경]

 

 

↑↑ 정창식
갤러리 문경공간-아름다운선물101 대표
법무사

ⓒ 주간문경

 

뒷마당에는 지난해 맺은 산수유 열매가 추운 겨울 동안 떨어지지 않은 채 달려 있더니 이별하는 양 떨치듯 꽃망울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른 봄 일찍 꽃을 피어냈다.

산수유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언제 피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수필집‘자전거여행’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 능선 아래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듯한 산수유 꽃은 김훈의 표현처럼 중량감을 느낄 수 없다. 그저 꽃의 그림자 인양 무심한 파스텔톤 기운이 번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 김훈은 산수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겨울에 미리 봄을 채비했던 산수유 꽃이 생기를 잃어갈 무렵, 앞마당에는 봄꽃의 성찬이 시작된다. 개나리와 영춘화, 홍매화, 할미꽃, 돌단풍, 메발톱꽃, 앵두꽃 그리고 모과나무 꽃까지 갖가지 꽃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꽃은 홀로 피는 것보다 무리 지어 필 때 마음을 더 빼앗는다. 연분홍 영산홍과 철쭉 그리고 꽃잔디는 우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봄의 절정으로 이끈다.

그러나, 봄꽃의 백미는 모란과 작약이다. 모란은 지금 꽃망울을 부풀리려고 한껏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조금 뒤면 꽃망울을 터트려 구중궁궐 속처럼 은밀한 속살을 보여줄 것이다. 옛사람들은 모란을 ‘꽃 중의 왕’이라고 했다.

시인 김영랑은 그의 시, ‘모란이 필 때까지는’에서 모란이 피기 전까지는 아직 자신의 봄이 오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그리고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리면, 봄이 가버렸음을 안타까워했다.

시인은 그의 봄은 모란이 필 때 뿐이라고 했다. 모란이 지고 난 삼백예순 날 내내 봄을 여윈 섭섭함에 운다고 했으니, 그의 모란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무릇 꽃이 피는 시간은 열흘을 넘기지 않는다. 그에 비해서 모란이 피는 때는 상대적으로 더 짧다. 그 짧은 상실감을 사람들은 모란이 지고 난 뒤 피는 작약에서 위로받기를 원했다.

비록 작약꽃의 아름다움이 모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 짧은 아쉬움과 서운함을 다소나마 대체받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봄은 짧다. 특히, 요즘은 더 그런 듯하다. 남녘에서의 화신(花信)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벚꽃이 전국에 지천으로 피어난다. 사람들은 그 짧은 봄꽃에서 김영랑이 느꼈을 아쉬움과 봄꽃을 잃은 설움을 치환하는지 모르겠다.

어찌보면, 봄을 맞이하는 기쁨보다 봄날이 지나가는 아쉬움을 더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때쯤 부르는‘봄 날은 간다’는 더 절절하다.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그랬다. 봄꽃이 지면 봄을 여윈 설움으로 삼백예순 날을 울었던 시인의 마음을 조금은 알 듯하다. 그렇지만, 봄꽃이 지더라도 다음에 필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는 동안은 늘 봄날일 것이 분명하다. 모란이 다 지고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울었던 시인이 다시 또 봄을 기다렸듯이 말이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주간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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