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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곡(聾谷) 조용철 선생

2023년 04월 11일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법무사

ⓒ (주)문경사랑

 

어느 날 우연히 우리 지역 출신의 서예가 롱곡(聾谷) 조용철 선생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그후 그의 글씨를 직접 본 것은 영순면 백포마을의 백석정(白石亭)에서다. 백석정 현판과 중건기(重建記) 편액 글씨였다. 신후식 시인이 지은 중건기를 고아한 듯 단아하게 써 내려간 글씨는 정자 앞을 흐르는 낙동강처럼 유려하였다.

선생은 1950년 7월 가은읍 전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때 선생의 가정환경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글씨에 대한 재능이 남달라 초등학교 때부터 글씨에 정진하였다. 선생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 가난한 시골이라 붓을 구하기 힘들어 집에서 기르던 개의 어깨 털을 잘라 대나무에 꽂아서 붓으로 사용했습니다.”

군을 제대한 선생은 동생의 도움으로 대구에서 ‘묵제(墨弟)서실’을 열게 된다. 이때, 서실 이름에 ‘아우 제(弟)’ 자(字)가 들어가는데 그 우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서실 운영은 쉽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과 서예에 대한 각고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은 1990년, 제2회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고서다. 대구에서 묵제서실을 연지 만 20년이 되던 해에 이룬 성과였던 것이다. 이듬해에는 우리나라 유일한 서예상이자 권위의 상징인 제6회 ‘원곡서예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대한민국 서예계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기에 수상은 놀라움이 아닐 수 없었다고 한다. 선생의 수상이 더욱 가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지연과 학연 등이 만연하던 서예계의 풍토에서 오직 실력으로 우뚝섰기 때문이다.

그 후 우리나라 서예계의 권위있는 각종 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후학 양성과 지도에 힘써 필묵은 더욱 원숙해지고 우리나라 서예계의 새로운 사조 물파주의(物派主義)에 동참하면서 새로운 변혁에 앞장섰다.

“매제(妹弟)의 1주기를 기념하는 추모전이 지난해 대구에서 열렸어요.”

며칠 전 선생의 가까운 인척인 전 문경시청 구본덕 총무국장으로부터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오로지 혼자서 절차탁마하여 대한민국 서예계를 이끌었던 선생은 2년 전 타계(他界)했다.

비록 떠났지만, 선생의 인품과 서예의 격(格)을 흠모하며 뒤를 따르는 제자들과 서예계의 추모는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선생을 기리는 첫 추모전이 열렸던 것이다. 그때의 작품 도록에서 남겨진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자검겸(慈儉謙), 수처작주(隨處作住)’ 등의 글자들이 자신만의 필체로 생동하듯 수록되어있었다. 그 가운데 “자검겸(慈儉謙)”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오랜 친구인 시인 손병철 철학박사는 우리 지역이 좋아 가은읍에 이거(移居)하고 있다. 그가 지은 “롱곡 조용철의 생애와 작품세계”라는 추모사에 선생이 평소에 밝힌 ‘자검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도덕경에 나오는 글로 나에게 세 가지 보배가 있으니, 첫째는 사랑(慈)이고, 둘째는 검약(儉)이고, 셋째는 감히 천하에 앞서 나서지 않는다는 뜻인데, 특히 세 번째 구절을 겸(謙)으로 해석한다.”

선생은 작품을 할 때나 일상생활에서도 겸손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남의 장점이 잘 보이게 되는데 그 장점으로 부족함을 채우게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자검겸”을 좌우명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랬다. 선생을 흠모하는 이들은 선비 같은 풍모와 함께 검약과 겸손한 태도를 가장 큰 덕목으로 꼽고 있었다. 어쩌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힘은 남의 장점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줄 아는 겸손을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은 떠났어도 그가 남긴 세 가지 보배는 우리 곁에 남아있음이다. 이제 우리 지역민들이 선생의 작품과 함께 그 뜻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늦었지만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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