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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回想)

2022년 02월 18일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주)문경사랑

 

피의자는 범행일체를 부인하였다. 며칠 째 밤을 새워 묻는 검사와 수사관의 거듭되는 질문에도 그의 대답은 한결같이 ‘아니요’였다. 긴 침묵 뒤에 이어지는 낮고 정확하지 않은 피의자의 목소리는 어두운 조사실의 분위기를 더욱 어둡게 하였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의 들뜬 마음들이 창 너머 불빛에서만 일렁이던 이십여 년 전 겨울의 밤이었다.

사건의 대략은 이렇다. 어느 마을 산 밑 외딴 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30대 후반의 여자가 발견되었다. 범인은 그녀의 동거남, 지금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였다. 그는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었고 조사 후 검찰로 송치되었다.

그날 오후, 피의자는 같은 마을의 친구들과 뒷산에서 산토끼를 잡아 외딴 자기 집에서 술을 마셨다. 날이 어두워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동거녀와 말다툼을 하였다. 그때 피의자는 그녀를 폭행하고 휘발유를 집에 뿌려 불을 낸 뒤 밖으로 뛰쳐나왔다. 친구들이 집을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경찰에서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다투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에 따라 가정불화가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는 모든 것을 부인하였지만, 그날 함께 있었던 친구들의 증언과 방화에 의한 화재라는 과학적 증거 등에 의하여 그의 범행임이 입증되었다.

다음 날, 검사는 피의자의 완곡한 부인에도 여러 가지 증거들을 종합하여 살인과 현주건조물방화로 법원에 기소하였다. 그때 공소장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검사가 전날 밤을 새면서 작성한 논고문이었다.

「…흉기로 머리를 때려 정신을 잃고 쓰려져 움직일 수 없는 피해자를 거실에 놔둔 채 불을 지른 것은 잔혹한 행위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합니다.」

그때 사형을 구형하는 검사의 논고문을 읽으면서, 무언지 가슴속에서 미세하게 울려오는 전율같은 것을 느꼈다.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인권의 보루이면서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가치를 중요시하는 검찰의 사명을 새삼 되새겨 보게 된다.

검찰수사관으로서 여러 가지 사건을 접하여 왔었다. 그러나 사실, 그때의 사건처럼 진중하게 마음을 짓눌리게 하였던 사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제 검찰을 떠나야 할 연치에서 그 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새삼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새내기 수사관으로서 검찰이 지향하는 사회정의실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때에 보았던 저 논고문의 마지막 글 때문인 듯하다.

사회구성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피의자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검사의 그 논고는 직업에 대한 스스로의 지고한 소명과 책임감 없이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사실, 누가 잘못한 이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던져야 할 때 던지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질서와 정의는 어떻게 될까?

일부에서는 사형이라는 제도가 헌법상 보장된 기본인권의 가장 적극적인 침해일 수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침해가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 사회를 대표하여 돌을 던지는 저 논고는 정말 귀중하다는 생각이다.

때로, 우리들은 직업과 가치관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공(公)과 사(私)가 부딪히는 경우이다. 그럴 때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일 수 있다. 그와 같은 선택의 순간에서 새내기 검찰수사관이었을 때 보았던 저 논고문은 한 번쯤 되새겨 볼 의미가 있을 듯하다.

그렇지만, 이제 다시는 그 사건과 같은 검사의 논고문은 보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안전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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