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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醬)

2021년 02월 19일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주)문경사랑

 

“정월 초사흘에 담아도 된다네요~”

설을 쇠고 나서 예정일에 장(醬)을 담기로 했다. 그런데, 예정일인 음력 정월 초나흘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혹시나 하여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비가 와도 상관없는데 전날인 정월 초사흘도 좋다고 하였다.

하지만, 안해와 함께 예정일에 담기로 했다. 설을 쇤 뒤 손이 없는 말(馬)날에 장을 담그면 좋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직접 장을 담아본 적이 없었다.

“직접 된장을 만들어 보세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간단해요.”

지난해 여름쯤이었을 것이다. 문경읍에 가면 자주 들르는 단골식당이 있다. 보리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인데 콩나물, 고사리, 숙주나물, 시금치, 산채나물, 콩자반 등 다양한 반찬들이 아홉 가지 이상이 나온다.

지역민만 아니라 외지인들에게도 맛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내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있는데 된장국이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 맛이 정말 일품이다. 산채두부도 별미다.

어느 날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내년에 된장 만들 때 직접 만든 된장을 살 수 있을까요?”

그때 주인이 그랬다. 메주만 있으면 된장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고 간단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접 장을 담아보라면서 된장 담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렇지만,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설날 이후 말(馬)날과 소금물, 계란, 500원짜리 동전, 빨간고추와 숯 등의 단편적인 몇몇 용어들뿐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내년에는 정말 된장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무슨 결기(?) 같은 것이 생겼다.

사실, 메주와 된장은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겨울이면 메주를 만드시곤 하셨다. 직접 쑨 콩을 발효시켜 뜨끈한 안방 아랫목에서 메주를 만들었는데,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일을 시키곤 하였다.

네모반듯하게 모양 좋은 메주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발로 꾹꾹 눌리게 하고, 새끼줄로 메주를 달도록 하였다. 벽에 걸린 메주가 우리가 먹을 간장과 된장이 된다는 사실과 무언가 토속적인 듯한 풍광이 정서적으로 안온함을 주는 듯했었다.

콩 수확이 끝난 늦은 가을 무렵, 가까운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그에게 메주를 부탁했다. 그리고 며칠 전, 그로부터 단단하고 잘생긴 메주 일곱 개를 건네받았다.

설이 지나자마자 바빠지기 시작했다. 볕이 봄날 같던 오후 뒤뜰 장독대에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장독 항아리를 씻어 내었다. 그리고 진남교반에서 약숫물을 받아왔다. 예정일 전날 늦은 시간까지 안해와 적당량의 소금물을 만들었다.

계란을 소금물에 띄어 보았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계란의 윗 표면이 드러났다. 이제 메주를 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뭔가 불안했다. 지금까지 전해 들은 얄팍하고 단편적인 방법만으로 과연 성공적인 장 담그기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때, 떠오른 것이 보리밥집 아주머니의 그 말이었다.

“어렵지 않아요. 간단해요. 과감하게 해보세요.”

그랬다.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말(馬)날이라는 음력 초나흘이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소금물에 메주를 넣고 그 위에 숯과 말린 빨간 고추와 대추를 넣었다. 그리고 장모님이 말씀하신 깨도 뿌렸다.

장독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 언젠가 보았던 눈에 익은 모습이 들어왔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설플 수 있겠지만, 그 옛날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렇게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언젠가 그들도 기억할 수 있게 말이다.

장독 뚜껑을 닫았다. 이제 오십 여일의 따뜻한 햇볕과 서늘한 바람이 장(醬)을 숙성시켜 줄 것이다. 그때, 안해와 함께 봄날의 축복처럼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을 맛볼 수 있겠다. 하늘을 보았다. 비 대신에 바람이 선 듯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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