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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저 바람 속에

2019년 03월 19일 [주간문경]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주)문경사랑

 

가끔 시내를 운전하거나 걷다보면 아는 이가 보이는 경우가 있다. 긴 코트에 검은색 베레모가 트레이드마크인 시인 김시종 선생도 그 가운데 한 분이다. 고희가 넘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늘 발걸음이 규칙적이고 힘이 있다. 멀리서 인사라도 할까 싶어 눈을 주어도,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법이 없다. 뚜벅뚜벅 앞만 보고 갈 길만 걸어간다.

어느 날 선생을 문경문화원에서 만났다. 문화원 관계자들과 함께였다. 한적하고 무료한 오후였다. 선생의 말씀이 이어졌다. 다른 볼 일이 있어 적당한 시간에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교수가 우리 문경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귀가 솔깃했다.

이어령 교수가 누구인가. 시인, 소설가, 비평가, 칼럼리스트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대한민국의 지성으로 일컫는 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굵직한 국제대회의 행사를 연출한 탁월한 기획가이기도 하다.

“이어령 교수가 6․25 전란 무렵에 지금의 문경공업고등학교에서 초창기 3회 졸업생 담임을 맡았어요.”

그의 말에 의하면, 서울대를 졸업한 이어령 교수는 문경공업고등학교에서 1년 남짓 국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문화의 거리 주변, 지금의 기독교서점이 있는 자리에서 하숙을 했다고 한다.

선생은 일화(逸話)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이어령 교수가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인물이 된 뒤의 일이다. 당시에 학급실장을 맡았던 김모씨라는 이는 스승을 존경하고 따랐다고 한다.

이어령 교수가 담임선생이었기에 당연히 자기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스승의 이력에서 자기보다 두 살 적은 사실을 확인하고 아연(啞然)했다고 한다. 격변의 시기에 그와 같은 일들은 재미있는 일들이라며 웃음 짓는다.

문득, 김시종 선생을 쳐다보았다. 화기(和氣)로운 얼굴에 건강한 모습이다. 짧은 시어(詩語)를 즐겨하는 여전한 현역 시인이다. 향토 문단에서 그는 후배 시인들의 모범(模範)이다. 그는 오래 전 중앙일보 신춘문에 시조 부분에서 ‘도약(跳躍)’이란 시가 당선되었다. 지금도 영강시안이라는 이름으로 41회째 시집을 내고 있다.

그때 선생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당시, 이어령 교수가 쓴 글이 있었는데 ‘문화당서점’을 운영하던 진성이씨 사장님이 글의 가치를 발견하고 책으로 출간해 준 적이 있어요.”

선생의 말에 의하면, 그 책이 이어령 교수가 유명해지고 다시 재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했다.

그때, 이어령 교수가 쓴 책 가운데,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책이 떠올랐다.

김시종 선생이 언급한 그 책과 관련이 있는지는 사실 알 수가 없다.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그 책은 1962년 이 교수가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쓰여 졌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 등에 비추어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책을 지은 이어령 교수가 우리 지역에서 함께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십대라는 짧은 삶의 여정에서 우리지역의 풍광과 사람 그리고 풍습들이 그의 지고한 사상과 감성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짐작이 드는 것이다. 저 영강의 끊이지 않는 푸르름과 울울(鬱鬱)한 소나무들이 여름 날 그의 가슴 한 구석을 흔들며 지나가지 않았을까. 영신벌 가을 황금 들녘은 어땠을까.

점촌의 억센 듯 순한 옛 사람들은 또 어떠했을까. 그래서, 그가 이십대에 쓴 명저(名著)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적지 않은 날줄과 씨줄 사이에는 전란의 와중에 있었던 우리 문경의 숨결 한 자락이 보이지 않게 스며 있을 것이다.

시계를 보았다. 선생의 이야기가 더 길어질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가야할 길이 더 있어서다. 창밖이 뿌옇다. 그래, 봄을 재촉하는 바람 때문일 터이다.

밖으로 나왔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으로.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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