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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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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17일 [주간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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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정창식
아름다운선물101
문경문화원 이사 | ⓒ (주)문경사랑 | | 바람이 서늘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시원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몇 번의 뒤척임 끝에 몸을 일으키면 어제와는 다른 기온을 느낀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아직 여름임을 알게 된다. 이른 아침이지만 방안과 밖의 기온 차는 분명하다.
마당으로 나갔다. 작은 텃밭의 작물들은 한여름의 폭염 속에서도 잘 버텨준 듯하다. 고추와 들깨는 예년과 비슷하고, 토마토와 호박은 생각지도 않게 잘 자라고 있다. 담장 위 호박넝쿨에는 실한 호박들이 여러 개 달려 있다. 어느 날 그 호박들을 유심히 보던 옆집 할머니가 담장 너머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호박 같은데 호박 익거든 씨 좀 줘요. 우리 집 호박은 영 소식이 없네….”
그 말을 들은 뒤부터 아침마다 담장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호박들에게 눈이 갔다. 볼 때마다 호박들이 더 커진 듯 했다. 그리고 그걸 보는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안해에게 지나가듯 말했다.
“옆집 할머니에게 호박 하나 그냥 드려야겠어….”
아침 상 위에 올릴 호박잎을 따다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새로 난 호박잎이 한여름 때 보다 작아진 듯했다. 잎은 새로 빈번히 나지만 크기가 전만 못했다. 또 작은 호박들이 많이 맺히는 것 같았다. 여린 새잎을 따다가 그 옆에 호박이 맺혀있는 걸 보고 단념하곤 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가을이 오고 있구나!”
그랬다. 유래(流來)가 없는 폭염 속에서 언제 끝날지 모를 여름이었지만, 사실 여름은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에는 어디서 왔는지 저 서늘한 바람이 우리를 시원하게 하고 더위에 지친 몸을 위로해주었던 것이다.
며칠 전부터 아침 귀를 시끄럽게 하던 매미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대신 작은 벌레 소리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호박넝쿨들은 담장 위에서 줄기를 힘차게 뻗으며 마냥 앞으로 나아갈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더 가지를 않고 머물고 있었다. 곁줄기들이 더듬이처럼 새로 뻗어보지만 이미 행진은 끝이 난 듯했다.
그래, 호박은 우리들보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하나라도 호박을 더 열기 위해 그 열매들을 마디마다 맺고 있는 것이다. 그 호박이 익을지 말지는 관계하지 않았다.
물을 뿌렸다. 담장 아래 키를 높인 칸나가 폭염 때문에 꽃을 피우지 못했다. 비가 내렸으면 분명 빨간 꽃을 맘껏 피웠을 칸나가 안쓰러웠다. 그리고, 키 작은 꽃들에게도 물을 주었다.
안쓰럽게도 폭염 탓으로 줄기와 잎들이 말라버린 나무들이 몇몇 보였다. 결국 그들은 가을에는 단풍을 피우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도 물을 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 곳에 눈이 갔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수련(睡蓮)이 피었다. 아, 늦여름에 저 고운 수련이라니! 숨이 멎는 듯했다. 한 여름에 꽃이 두 번 핀 것을 보았다. 잎에 가려져 있는 수련을 더 보기 위해 다가갔다. 피어 있는 수련 옆에 작은 망울이 하나 더 있었다.
이 꽃이 지면 저 망울이 꽃을 피울 것이다. 그렇다면, 수련도 열매들을 맺고 있는 저 호박들처럼 가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주어진 출산(出産)의 시간들을 소진(消盡)하고 있는 중이다.
문득, 우리들도 저들처럼 가을을 준비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지금의 무더위에 하루를 보내기만 급급할 뿐 분명 다가오고 있는 가을과 겨울을 미처 모르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다시, 물을 주었다.
(010-9525-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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